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미국에 사는 누님 부부가 손녀와 함께 20여 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손녀에게 고국의 추억을 담아주려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함께 어머니 산소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모두 주차장으로 갔는데, 누님만은 묘를 움켜쥐고 머리를 떨군 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혼잣말로 이렇게 말하면서요.

"엄마, 나도 벌써 여든이 넘었어요. 이제 곧 만나겠네요. 고맙고 미안해요."

그 일이 있고 나서 한동안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어디 사람만이 그럴까요?

추운 지방에 사는 어미 펠리컨은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몸속에 있던 살과 내장을 꺼내놓고 죽으면 새끼들은 그걸 먹으며 생명을 유지합니다. 어미 뱀도 산란과 동시에 죽고 새끼들은 어미의 시신을 먹고 자란다고 하니 생명의 이어짐에는 이렇게 위대한 모성(母性)이 자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데는 사랑이 필요하고, 그 사랑에는 조건 없는 희생과 헌신이 따를 겁니다. 이 희생과 헌신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알 수 있는 글이 「내 영혼의 산책」(박원종)에 실려 있습니다.

어느 현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사람의 뼈를 발견했습니다. 현자는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뼈는 틀림없이 여자의 것이다. 그것도 아이를 많이 낳고 오랫동안 고생한 여자의 뼈가 틀림없다. 여자의 삶을 생각해 보아라. 여자는 흔히 어려서부터 늘 남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 왔다. 그리고 결혼해 아이를 가지면 온몸의 양분을 아기에게 내어준다. 젖을 먹이고 온갖 고생을 해 가며 키운다. 먹을 게 있으면 자신은 먹지 않고 자식에게 준다. 그래서 여자는 죽으면 이처럼 뼈가 가볍고 시커멓고 볼품없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머니들의 희생으로 이만큼 온전히 성장했습니다. 그 희생에 따르는 고통을 어머니들은 어떻게 감내했던 걸까요?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 비밀은 없는 걸까요?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호르몬 때문에 느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엄마의 뇌에는 ‘옥시토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데, 그때 엄마는 모성애를 느끼면서 행복해진다는 거예요. 「행복의 공식」(슈테판 클라인)에서 저자는 옥시토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옥시토신은 아이를 돌보는 모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엄마가 아기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를 겪어야 하는데, 이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옥시토신이다. 이는 동물의 암컷에서도 같다. 이런 변화를 통해 많은 암컷은 새끼를 낳기 직전이 되면 거친 야수에서 헌신적인 엄마로 변한다. 예를 들면 암컷 쥐는 새로 태어난 다른 쥐의 새끼 냄새를 맡으면 그 새끼를 먹어치운다. 그러나 자신이 새끼를 낳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할 즈음에 암컷은 이미 부드러워진다. 새끼가 나오면 젖을 먹이고 핥아 주며 보호한다."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 엄마는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 느낌을 바탕으로 모자간에 강한 유대감이 생긴다. 행복의 느낌을 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성의 뇌 구조는 아이를 낳게끔 프로그래밍돼 있다. 자연은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좋은 감정들로 보상하는 것이다."

옥시토신의 존재로 인해 사랑에 따르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고통마저도 기쁨과 보람으로 느끼게 돼 자식에게는 사랑으로, 어머니에게는 행복감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해 오신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그런 행복감으로 보상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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