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오랜 기간동안 준비해 왔던 간호법이 수면에 올라왔다가 이번 국회 본회의 재투표에서 부결해 논란이다.간호사를 위한 간호법이 아니고 누군가 돌봄이 필요할 때 간호한다는 간호법인데, 간호사 직능을 위한 간호법으로 이해하고 보도됐다.

우리나라 인구구조와 질병구조가 빠르게 변화는 상황에서 간호법은 시대적 소명을 반영한다. OECD국가 모두 간호법이 단독법으로 존재하는데 우리나라만 안 될 법을 만드는 듯 반응하는 걸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사회 변화 속도를 자동차 속도에 비유했다. 기업이나 사업체가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데, 시속 100마일을 달리면서 변화를 주도한다. 반면 법이 가장 변화 속도가 느리며 시속 1마일로 변화에 제어 구실을 한다. 벌어질 일들이 벌어져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돼야 법이 바뀐다. 법이나 규제는 보수적 대응이 바람직하며 미래를 예측해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사회가 변화하면서 시대를 반영하는 법이나 제도로 변화하는 건 필수불가결하다.

앨빈 토플러는 경제 속도는 매우 빠른데 사회 대응 속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발맞추지 못하고 발전 속도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사회·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보건 영역에서도 매우 크게 변화했다. 1960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6.0에서 2022년 0.78로, 평균수명은 52.4세에서 86세로 증가했다. 1960년대 폐렴이나 폐결핵 등 감염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암이 사망 원인 1위다. 노인인구가 급증해 만성질환과 노인건강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이런 변화에 법은 얼마나 탄력적으로 대응하는가?

예전에는 보건의료 분야에서 치료가 매우 중요한 질병 중심 문화가 주를 이뤘는데 지금은 건강 증진과 예방 중심, 유전자 분석과 행위 분석을 통해 질병의 예측적 안내 등 건강관리 개념이 달라지고 누구든지 접근할 범위가 넓어졌다.

코로나 감염병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논의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으며, 스마트 시계나 로봇은 자가건강관리는 물론이고 간단한 진단까지도 가능케 한다. 집 안에서 조그만 기계 도움으로 거주하는 사람의 활력징후는 물론이고 심전도도 측정 가능하며, 옆에 사람이 없어도 공간을 초월해 거주자의 상태를 알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다만, 상용화시키는 데에는 개인정보 동의가 법적으로 허용 범위가 아니어서 그저 개발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돌봄영역, 건강영역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 상태를 예측하는 일에는 보건의료직종보다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직종의 기여가 크게 부각된다. 많은 직종을 필요로 할 정도로 앞으로 해결해야 하고 해결될 범위가 보건의료영역에 널렸다고 볼 수 있다. 

보건의료 분야에 뛰어드는 직종은 다양한 데 비해 질병 치료에 가장 전문적인 능력을 보이는 직종인 의사는 지난 10년 이상 배출인력을 증가시키지 않아 폐단이 커진다. 병원에서는 수련의를 공급받지 못하고, 서울에서 조금만 멀어도 진료과목 의사를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의사들의 몸값은 높아진다. 반면 간호사는 꾸준히 입학정원을 늘렸으며 여전히 고된 근로환경으로 이직률이 높다.

보건의료직능의 업무 범위를 위협하는 것은 간호법도 아니고, 간호법으로 법적 보호를 받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간호사도 아니다. 이미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 자체가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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