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어제는 현충일이었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비판이 아님)하는 세력을 빼놓고는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내게도 어려서부터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다. 현충일은 오랫동안 분단 이후에 발생한 사건들에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로 여겨졌다. 다행히 이즈음에는 독립전쟁을 벌이다 희생당한 분들도 함께 기린다. 30년 전쯤으로 기록되는데, 처음으로 임시정부요인 3분의 유해를 모셔 오는 날 애들 손을 잡고 국립묘지에 갔고, 우연히 뉴스에 나왔던 일이 있었다.

난 역사학자로서 생각한다. ‘현충일’이라면 그분들을 추모하는 일과 더불어 그분들을 희생시킨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정확하게 알고, 왜 그런 일을 하셨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며칠 전 나는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호수 근처인 오르녹 암각화를 조사하면서 잠시 틈을 내어 아버지께 기제사를 올렸다. 크고 널찍한 바위 위에 미리 준비한 지방을 붙이고 몇 가지 과일 등 제수를 올려놓았다. 그때 절하는 내가 간곡하게 빈 내용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편안한 내세와 고마움이다. 또 남은 삶도 말씀하셨던 대로 나의 ‘사람 구실’과 손자들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다. 이게 우리의 제사다. 현충일이 ‘MEMORIAL DAY’를 그냥 모방한 게 아니라면 당연히 제사의 자세로 추모해야 한다. 때문에 그분들이 주체가 된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면서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이 원했던 미래를 구현하는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문제를 놓고 그 나라의 성격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중요한 구성원이었고, 우즈베키스탄도 소련의 한 부분이었다. 그 소련은 일본, 중국(청나라 포함)과 더불어 조선의 멸망, 일본의 식민지화, 한민족의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대재앙을 일으킨 원죄가 있다. 아무리 국제관계의 산물로서 불가피했어도 우방으로 관계를 재정립하려면 가해자로서 사과를 하고, 피해자 또한 이를 양해하면서 수용하는 일이 당연하다. 특히 명분이 없거나 비도덕적인 침략전쟁을 일으킨 경우에는 양국의 역사 발전을 위해서도 매듭을 짓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소련, 중국 모두 이 전쟁에 대해 우리의 ‘한’을 달래줄 만한 말이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중국은 오히려 ‘항미원조’ 따위의 용어를 썼고, 심지어 시진핑 주석은 부주석 시절인 2012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전쟁 참여를 ‘의로운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그러한 인식의 연장이었는지 그는 훗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 한국은 조선의 속방이라는 뉘앙스로 얘기했다. 이러한 중국인의 인식과 행동을 적극 비판하는 지식인이나 정치인, 심지어는 예술인들이 소수인 것이 우리 현실이다.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제3제국’이 행한 죄를 쉬임없이 반성한 것처럼 일본 사회도 국제사회와 한민족에게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또한 중국과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도 대한민국과 우호관계를 맺으려면 정부 차원에서 최소한의 ‘유감’ 정도는 표명하고, 지식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반성하는 모습들을 보여야 바람직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왔다.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고 실현 여부와는 관련 없이 유감 표명이라도 요구해야 했지만 안 했다. 결국 러시아는 아직도 전체주의 탈을 완전히 벗지 못했고, 동족(?)인 우크라이나를 잔인하게 침략하는 중이다. 당연히 중앙아시아로 도피한 국민들에서 확인하듯이 스스로도 불행해지는 중이다. 중국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해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여러 부분에서 공산주의의 잔재가 남았으며, 어떤 부분은 오히려 복구해 간다는 우려를 낳는 중이다. 

만약 러시아의 신지식인들과 중국의 신지식인들이 자국의 어두운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반성하면서 피해국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그 마음을 표명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주변의 우호적인 태도를 더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국의 정부는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을 함부로 펼치거나 불필요한 침략전쟁을 시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 두 나라 내부에서 진행되는 상황들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더욱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타인의 ‘정의’와 ‘자유의지’를 외면한 ‘자(者)’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업보일 것이다. 

나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19세기 후반 러시아에 합병당했다가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의 국립 사마르칸트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그런데 불가사의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현충일에 추모할 분들이 희생당한 사건은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인데도 그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지식인이나 예술인들도 ‘자유’, ‘인권’, ‘민주’를 지키고 찾다가 희생당한 그들의 행위와 희생정신을 승화시키는 일에 인색하다. 심지어는 비판적인 평가도 적지 않다. 만약 이러한 현충일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미래에는 또 다른 그늘이 드리워질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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