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모 강남여성병원 원장
성영모 강남여성병원 원장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생일 축하합니다."

누구나 생일(生日)이라고 해서 일 년에 최소 한 번은 축하를 받는 날이 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사랑하는 연인들, 임종을 앞둔 노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날이다.

나에게는 생일과 관련해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성격 탓에 너무 수줍음이 많아 선뜻 남에게 말을 걸기조차 어려웠고, 해야 할 말도 잘하지 못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당황해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보통 생일에 친한 친구 2∼3명을 집에 초대하면 친구들은 공책이며 연필이며 필통을 선물로 가져왔고, 어머니께서 해 주신 잡채, 갈비, 미역국 같은 맛있는 음식을 온돌방에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생일을 일주일 남겨 놓고는 아버지께서 반 친구들 전체를 초대하라고 하셨다. 한 반에 50여 명 정도 있었지만, 나는 남자친구 20여 명만 초대했다. 당시 짜장면과 탕수육을 최고의 음식이라고 했으니 친구들은 환호했고, 아버지께서 모든 친구들에게 답례품을 주셨는데 완전히 영웅이 됐다.

"영모야! 친구들에게 큰소리로 하고 싶은 말을 해 봐라. 친구들에게 너의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란 말에 나는 "오늘 너희들이 와 줘서 정말 고맙고 행복해.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내자." 친구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는데 기분이 구름 위를 나는 듯했다.

그 이후론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여전히 여자친구들과는 소통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여자친구들과 있으면 머리가 하얘지면서 왠지 모를 창피함이 가득했다. 이후 의대에 입학해서 7년(1년 유급)을 다니는 동안 5년을 과대표를 했지만 졸업할 때까지도 여학생들과 소통이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여성 관련 전문의가 됐으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의사가 돼 인턴을 시작하고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산부인과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여성을 대하는 벽이 허물어졌고, ‘나도 여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적응했다. 그 원동력이 바로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가르침, 아버지께서 주신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인 자신감 덕분이라 생각한다.

많은 뜻을 가진 ‘선물(Present)’을 하나로 연결해 보면 현재가 즐거움이자 마음이란 뜻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에서 인생의 궁극 목적은 ‘행복 추구’에 있고, 행복은 ‘최고의 선’이어서 이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성자라고 표현했다. 과거에 집착 말고 경험 삼아 현재의 오늘을 산다면 행복한 밝은 미래는 보장된다는 뜻이다. ‘좀 더 나은 내일, 날마다 새로워진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중국 은나라 고서에도 비슷한 맥락의 한자성어가 있는 점으로 미뤄 오늘이 가장 큰 선물임에 분명하다.

무릇 사람들에게 "어떤 선물을 갖고 싶어요?" 하고 질문을 하면 "돈이요", "아파트요", "명품 백이요" 따위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물론 선물이라고 하면 내가 소유한다는 가정에서 그런 대답이 나올 도리밖에 없지만 선물을 받으면 진짜 행복하다.

하지만 돈으로 살 만한 행복의 양은 미미하다.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돈은 오히려 불안 완화제에 가깝다. 왠지 쓰지 않는 돈을 지갑에 잔뜩 넣고 다니는 셈과 같다.

선물에는 ‘좋은 선물’과 ‘나쁜 선물’이 있다. 또 ‘받고 싶은 선물’도, ‘받고 싶지 않은 선물’도 있다. 선물을 받으면 대부분 좋아해야 하지만, 일부 선물은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나기도 한다. 선물은 현재의 즐거움이라 했는데, 결국 사람이 관여하니 감정이 생기면서 선물을 주고도 욕을 먹는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누가 나에게 생일에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나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도 친해지고 싶은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따뜻한 사람, 보고 싶지 않은 사람, 그 밖에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이 중에서 소통이 잘 되고, 나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내게 필요한 부분을 주는 사람, 내 전부를 바칠 만한 사람,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은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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