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균 정경부장
안재균 정경부장

변변한 스펙이 없어 자격증이라도 따 볼까 하는 마음에 도서관에 자릴 깔고 앉을 때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 집에는 손을 벌리기 싫었던 시절이다. 군에서 갓 전역한 시기여서 자립갱생(自立更生) 의지는 더 강했다. 그래서 주머니 사정은 늘 빡빡했다.

점심 메뉴는 늘 같았다. 당시 국수 한 그릇을 푸짐하게 담아주던 도서관 앞 분식집은 점심을 해결하는 주요 해방구였다. 국수를 담은 사발에 신 김치를 송송 썰어 김가루와 함께 올려주면 한 끼를 든든하게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중년이 돼서도 국수는 여전히 우선순위 메뉴다. 국수는 흔히 곡물가루를 반죽해 길게 늘여 먹는 면으로 순우리말이다. 좁은 의미로는 잔치국수를 뜻한다. 잔치국수는 말 그대로 잔칫날이나 기념일에 먹었던 음식으로 알려졌다. 다만, 요즘 밀을 반죽한 국수와 조상들이 기념일에 먹던 메밀로 반죽한 국수는 다르다. 

국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라고 한다. 메소포타미아는 서아시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사이에 둔 지역에서 발흥한 역사상 세계 최초의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가 국수 기원지로 알려진 데는 물을 대기 좋은 기후 조건 때문이다. 관개농업 발달로 밀 경작이 활발해지면서 국수라는 음식문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국수라는 음식은 중국 한나라와 서양 로마제국 간 교역길인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으로 전파됐다. 우리나라 국수는 중국 송나라와 교역이 활발했던 고려시대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당시 국수는 현재 우리가 먹는 국수와 다르다. 쌀 농사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밀이 귀했기에 서양에서 만들어 먹는 밀 요리는 먹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밀과 유사한 메밀을 섞어 김치 육수를 곁들인 냉면이 유명했다.

평양냉면이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물냉면이다. 반면 갈빗집에서 고기를 먹고 후식으로 먹는 함흥냉면은 매운 비빔냉면이다. 함흥냉면은 기자가 백년가게를 취재하면서 한번 맛본 적이 있다. 북한 함흥에서 회국수라고 하는 음식이 남한에서 실향민을 달래는 함흥냉면으로 변형됐다.

원래 감자전분이 주원료였는데, 남한 사정에 맞게 고구마전분으로 면을 뽑게 됐다고 한다. 질기고 탄성을 갖춘 면을 뽑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팔팔 끓는 물이 아닌 찬물을 끼얹으면서 90℃ 온수를 맞추는 과정은 면을 뽑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이렇게 나온 면은 너무 질겨 가위질이나 칼질 없이는 먹기가 힘들다. ‘쇠심줄’ 같은 면발 탓에 주방에서는 등판 위로 그릇째 내려치면서 비벼내야 할 정도다. 

국수가 대중에게 잔치국수라는 이름으로 통용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해방 이후 미군이 들어오면서 잔치국수가 대중에게 보급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미군이 들여온 밀가루와 일본인이 두고 간 소면 공장에서 보급한 소면에 건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후루룩’ 말아 먹은 면 요리가 현대판 잔치국수 원조라고 보면 된다. 일제강점기 군수보급기지로 전락하면서 피폐해진 이 땅에 국수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때 널리 퍼졌다. 

당시 시대 상황 또한 국수 음식문화를 키웠다. 해방과 함께 베이이붐 세대를 거치면서 한 집 건너 결혼 잔치를 벌이다 보니 잔치국수는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음식이 됐다. 그렇다고 온 손님을 대충 먹여서 보낼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아니다. 볶은 소고기, 표고버섯, 호박, 당근, 달걀지단, 오이채와 같은 고명을 올려 영양소를 고루 담아냈다. 그런데 이렇게 올린 고명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다. 온갖 복(福)을 뜻하는 오방색을 띤 국수 한 그릇에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 다섯 가지 기본색을 담았다. 오행 기운을 담아내면서 잔치를 벌였으니 ‘잔치국수’라 부르지 않았을까. 

잔칫집에 국수는 결혼식장에서 먹는 음식이 됐다. 그런데 요즘 결혼식에서 잔치국수는 이제 하품(下品) 취급을 받는다. 먹거리가 넘쳐나는 뷔페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잔치국수는 한쪽에서 ‘팅팅’ 불어 구색만 갖춘 음식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잔치국수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가깝지 않으니 축하금만 보내기 일쑤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이런 양상은 더 두드러진 듯하다.

얼마 전 월례회의 때 일이다. 직원 결혼식이 있었지만 직원들 참석이 저조했던 듯하다. 바쁘다 보니 그랬을 테지만 축하하는 마음 전하는 일도 소홀했다고 한다. 언론사다 보니 회사에서 주연 노릇은 대부분 기자들이 한다. 그렇다 보니 베푸는 일에 소홀한 기자들이 일부 있다. 잔칫날 차려 주는 밥상에 익숙한 기자들이다. 더 얄미운 일은 이런 기자들이 자기 경조사는 그렇게 잘 챙겨 먹는다는 점이다. 수습기자들 보고 배울까 겁난다. 잔치국수 한 그릇이라도 나눠 먹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베풀어야 오방색 복이 들어온다. 누군가 말했다. 손해 보는 듯이 살면 삶이 행복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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