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며칠 전 어두워지니 아파트 단지 사이에 대포 소리가 터졌다. 5년 만이라는 해변축제의 폭죽인가? 송도신도시 해변의 하늘을 번쩍번쩍 수놓는데, 해변축제가 있었는지 몰랐다. 예나 지금이나 바다와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로 인천 앞바다는 명소다. 송도신도시가 해변을 독차지한 요즘은 다가가기 어렵다. 주변에 살지 않으면 접근이 성가신 장소에서 축제가 열렸나 보다.

축포가 터진 장소에서 멀지 않은 송도 6·8공구는 하늘을 더 높게 찌를 초고층 빌딩이 해변을 수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인천의 아낙들이 오랜 세월 조개를 캐 온 갯벌이던 송도신도시에서 화려함을 더욱 빛낼 것인가? 103층이라고 한다. 2007년 미국 뉴욕타임스는 아시아에서 100층 넘는 빌딩을 경쟁적으로 짓는 현상을 ‘선진국이 되려는 욕망’이라는 투로 조롱한 적 있는데, 인천이 응답할 모양이다. 세계 초일류 인천으로 등극하려는 걸까?

미국인이 살고 싶어 한다는 장소의 으뜸이 마이애미 해변이라고 한다. 어쩌면 송도신도시와 비슷할지 모르는데, 여러모로 두 장소는 비슷한 역사와 환경을 가졌다. 매립해서 휘황찬란하게 만든 지역이라는 점, 고급 주택이 즐비하다는 점, 기후위기로 해수면 상승을 걱정할 처지임에도 그 사실을 한사코 감추려 한다는 점이 같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오랜 세월 원주민이 조개 캐던 마이애미 해변은 침식이 시작됐는데, 갯벌이 사라진 송도신도시는 여전히 신기루에 취해 있다는 점은 다르다.

103층이면 대단하다. 7조6천억 원이 필요하다는데, 인천시민의 세금만으로 짓는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도로를 비롯해 사회기반시설을 마련하는 데 적지 않은 예산을 동원해야 하리라. 해변을 아름답게 꾸며 더욱 찬란해질 예정이라던데, 왠지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 지하철까지 이어놓겠다지만, 두둑한 지갑 없이 인공호수, 128만㎡의 초고층 타워, 도심형 테마파크, 18홀 대중골프장, 상업과 전시시설을 두루 이용하지 못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103층이면 넘치게 높은 랜드마크인데, 한 주민단체는 국내 최고층을 맹렬하게 요구한다. 송도신도시에 이미 국내 굴지의 랜드마크가 번쩍이지만, 눈에 차지 않는 걸까? 155층 쌍둥이 빌딩을 진작 약속해 놓고 발뺌하니 화가 난 걸까? 삭발까지 단행했다고 한다. 한데 상당히 아쉽다.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는 사실을 왜 걱정하지 않을까? 103층이든 155층이든, 그 빌딩이 송도신도시 주민뿐 아니라 인천시의 자부심으로 데뷔할지 모르지만, 미래 세대도 마땅히 그러할까?

인천시는 155층으로 높이려면 103층보다 2조 원 이상 추가된다며 난색을 보이더니 현실적 대안을 찾겠다고 다독이는 모양인데, 광채가 나는 시설로 그 장소를 누빌 태세다. 그런데 인천시가 고려할 대상은 송도신도시의 특정 주민에 한정한다. 옳은가? 송도신도시 주민 모두 초고층 빌딩을 환영하지 않을 텐데, 그 장소에서 경제적으로,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시민은 어떡하나?

송도신도시의 새 랜드마크는 10년 후에 선보일 예정이라는데, 6차 보고서를 펴낸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 달라고 각국 정부에 호소했다. 2033년 해수면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쇠귀에 경 읽기"라도 다시 읊어야겠다. 4만 명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에서 지진 피해를 거의 받지 않은 지역이 있었다. 지진이 잦기에 확실하게 대비한 곳이었다. 2011년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2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낳은 2011년 일본의 한 지역도 비슷했다. 해변의 자카르타가 잠기면서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위기가 뚜렷하게 다가오건만 인천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신기루에 정신줄 놓는다.

얼마 전 괌을 강타한 태풍 마와르로 우리나라 수천 관광객이 고생했는데, 다시 다가오는 태풍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동남아는 요즘 40℃를 오르내리는데 우리는 괜찮을까? 우리 주변 바다가 전례 없이 뜨거워졌다는데, 103층 랜드마크는 10년 뒤 해변에서 독야청청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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