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학생들에게 "자살은 범죄인가?"라고 질문하면 대개 ‘예’라는 답변과 ‘아니오’라는 답변이 엇갈려 나온다. 법상으로는 "자살은 범죄가 아니다"는 것이 정답이다.

자살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오죽하면 죽음을 택했을까"라는 연민이 따르는 경우가 많지만, 자살은 남은 가족·친지와 사회에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트라우마를 남기므로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지탄 받는다. 또한 신(神)이 부여한 고귀한 생명을 인간 스스로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종교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여겨진다.

이처럼 자살은 비윤리적·비종교적이며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을 받지만 법적 측면에서 이를 범죄로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자살을 범죄로 취급하면 자살한 자를 ‘자살죄’로 처벌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살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자를 ‘자살미수죄’로 처벌해야 할 터인데 이것 또한 사회통념에 적합하지 않다.

더욱이 죄형법정주의(‘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는 관념) 측면에서 보자면, 법에서 범죄라고 정한 행위만이 범죄에 해당하므로 형법에서 ‘자살죄’ 또는 ‘자살미수죄’라는 죄명(罪名)을 두고 있지도 않은데 자살을 법상 범죄라고 지칭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자살은 법상 범죄가 아니지만 우리 형법상 자살에 관여하는 행위는 범죄가 된다. 형법 제252조 제2항은 타인을 교사(敎唆) 또는 방조(幇助)해 자살하게 하는 경우 자살관여죄(자살교사·방조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예를 들면 "함께 자살하자"고 해 자살 의사가 없는 자에게 그러한 의사를 갖게 하면 ‘자살교사죄’가 성립하고, 자살하려는 자에게 그 자살행위를 용이하게 하고자 자살도구를 마련해 주는 경우에는 ‘자살방조죄’가 성립한다.

자살을 교사·방조한 범죄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을 받게 되며, 10년 이하 자격정지를 병과받을 수 있다(제256조). 자살을 교사·방조했는데 자살에 실패하거나 자살을 하지 않은 경우에 그 교사·방조범은 미수범으로 처벌된다(제254조).

그런데 법상 자살죄가 없는데도 자살관여죄(자살교사·방조죄)를 두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형법학에서 논의되는 공범독립성설(공범은 독립한 범죄이지 정범에 종속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에 따르면 자살죄가 없더라도 자살관여죄(자살교사·방조죄)를 둘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공범종속성설(공범의 성립은 정범의 성립에 종속한다고 본다;우리나라의 통설·판례)에 따르면 자살죄가 없음에도 자살관여죄(자살교사·방조죄)를 둔 형법 제252조 제2항은 특별한 예외적 규정이라고 본다.

실제로 스위스 등 국가에는 자살관여죄(자살교사·방조죄)가 없다. 자살과 더불어 존엄사·안락사·연명의료 중단 등 죽음을 둘러싼 여러 쟁점들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 있는 법적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이 국내외 주목을 받는다. OECD가 2018~2020년 통계를 바탕으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순위 1위다. 한국은 2020년 통계 결과, 인구(연령표준화값) 10만 명당 24.1명이 자살했다. 이는 OECD 평균 자살률 11.1명의 2배를 넘는 수치이며, 인구 10만 명당 20.3명의 자살률을 보인 2위 리투아니아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자살의 원인도 다양하다. 경제적 빈곤, 군·직장 등에서의 차별과 폭력(괴롭힘 등), 수사에 대한 불만, 학업 부담, 노동 탄압에 대한 항거, 전세사기를 당한 절망감 등 경제·사회적 원인이 대다수다. ‘자살’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사회적 타살’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마당에 살아있는 사람들마저 생을 포기하는 일이 빈발하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고 해서 우쭐할 일이 아니다. 출생률 0.78, 노인빈곤율 최고, 국민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지금의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러다 진짜 ‘헬조선’이 될까 두렵다. 실효성 있는 자살방지대책을 수립·실행해야 한다. 전 정부의 탓만 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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