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일본 도쿄 시부야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근처에 소형 주거단지와 공사장이 많아 도시락 수십 개가 금세 동나는 지점이었다. 문제의 그날도 점심 장사 채비에 한창이었다. 손님이 다가와 편의점 안 화장실에서 사람이 나오질 않는다며 말을 걸었다. 그때부터 화장실 앞에 서서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렸지만 잠긴 문 안에선 아무런 기척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30분을 넘자 카운터를 지키던 일본인 동료가 사색이 돼 뛰어왔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죽은 거 아니야?" 손님이 편의점 화장실에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며칠 전 뉴스에 나왔다고 했다.

‘딸깍’ 기다림 끝에 열쇠로 문을 열었다. 순간 믿지 못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적어도 40분 이상을 화장실 안에서 보냈을 손님은 양변기 위에 앉아 잠자는 중이었다. 그는 내가 말을 걸고 난 뒤에야 잠에서 깼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화장실을 도망치듯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철없이 간절해졌다. ‘성공하고 싶다.’

"노숙인들 말이야, 추워서 공중화장실 변기 칸에 들어가서 잔대." 어느 날 노숙인을 취재하던 한 선배가 말했다. 왜인지 10년도 더 지난 그해 여름 편의점 화장실에서 마주한 손님의 모습이 스쳤다. 물론 지금 기자는 손님이 죽었을까 떨던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다. 기사로 노숙인의 어려움을 전하거나 전문가 입을 빌려 그럴싸한 해결책을 이야기하게 됐다.

그토록 바랐던 성공을 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무엇을 바꾸지도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기사를 쓰는 날이면 더 그랬다. 마감을 핑계로 속이 텅 빈 문장을 쏟아내고 나면 허무함이 몰려왔다. 써도 안 써도 그만인 글을 쓰느라 밥 먹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가 눈은 노트북에 둔 채 빵 한 조각으로 배를 채우다 목이 막혔다. 화장실에서 쪽잠을 자던 손님의 고단함을 안쓰러워할 자격이 있을까. 고단하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하루에 안녕을 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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