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때문인지,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19 여파 때문인지 전 세계 경제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곳곳에서 장사가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는 분들이 꽤 많으니까요.

경제는 정치가 좌우한다고 합니다. 위기에서 벗어날 관련법들을 제때 제정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요즘 여야의 모습에서 그런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이 듭니다. 어떤 뉴스에서도 건강한 입법활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서로를 향한 날 선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처럼 들려올 뿐입니다. 정치가 제 갈 길을 못 가고 왜 저렇게 방황하는 걸까요? 여야 모두의 ‘나만’ 살겠다는 ‘탐욕’이 저렇게 만든 건 아닐까요?

탐욕은 자신을 몰락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권력을 쥔 사람의 탐욕은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공멸의 위기에 처하게 합니다.

「어디에 있든 행복하라」(김원각)에 탐욕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가늠해 볼 법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닷길을 아는 사람의 안내로 항해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파도가 거세지며 강풍이 불었습니다. 배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길잡이가 말했습니다.

"이 바다 밑에 용왕이 사는데 사람을 죽여 제사를 지내야만 통과할 수 있소."

상인들은 의논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동네에 사는 상인들인데 우리 중에서 누구를 죽인단 말이오. 그러니 저 길잡이를 용왕께 바치는 수밖에."

길잡이를 죽인 다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후 그곳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얼마 못 가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방향을 몰라 어디론가 흘러가 버려 그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나쁜 일에는 ‘나만’ 빠지고, 좋은 일은 ‘나만’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마음이 탐욕입니다. 그러나 탐욕을 부릴수록 잠깐의 성취감만을 맛볼 뿐 언젠가는 집단 모두가 절망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엉뚱한 수다」(앤소니 드 멜로)에도 유사한 우화가 나옵니다.

천사들이 죽은 노부인을 심판석에 데려갔습니다. 심판관이 부인의 이승 기록을 살펴보니 딱 한 번 거지에게 홍당무를 줬을 뿐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자비라도 인정돼 홍당무의 힘으로 천국으로 인도되도록 결정했습니다. 

부인이 홍당무를 손으로 잡자, 그 홍당무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당겨지듯 위로 올려졌고, 부인도 그 힘으로 천국을 향해 오릅니다. 그때 한 거지가 나타나 부인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함께 따라갔고, 그 다음에 나타난 사람은 거지의 발을 잡고 함께 올라갔습니다. 홍당무로 인해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정작 위를 올려다보느라 밑의 사람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천국 문턱에 이르자 부인은 마지막으로 땅의 모습을 보려고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줄지어 매달린 수많은 사람이 보였습니다. 화가 몹시 난 부인은 거만한 손짓을 하며 외쳤습니다. 

"모두들 놔! 이 홍당무는 내 것이라고!"

부인은 손을 내젓다가 홍당무를 놓쳤고, 그 밑의 사람들과 함께 부인도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맞습니다. 권력자들의 탐욕은 그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를 공멸시키는 아주 고약한 욕망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국회 본연의 직무를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길잡이를 제물로 바친 상인들과 홍당무가 자신만의 것이라는 노부인처럼 ‘나만 살겠다’라는 태도, ‘좋은 것은 모두 내 것이어야 한다’는 ‘나만이’가 빚어내는 비난과 삿대질에서 벗어나 산더미처럼 쌓인 법안 심사에 온 정성을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게 모두를 살리는 홍당무가 돼 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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