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카툰이나 캐리커처는 ‘빗댄다’는 풍자의 뜻을 담는다. 의도가 배경에 깔렸다.

한데 의도하지 않은 순수한 열정을 담은 카툰과 캐리커처로 공직사회에 신바람을 불어넣는 공무원이 있다. 맥없이 그렸는데 외려 ‘속내’를 빼낸 표현이 진정성 있게 다가간다.

구희본(52)안양시 국제교류팀장이 그 주인공이다. 카툰 경력 20여 년, 여전히 아마추어로 남고 싶다는 그를 찾았다.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

# 사생대회·카툰·캐리커처

안양초등학교 4학년 때다. 코흘리개 어린 학생은 이모들 손에 이끌려 효성진달래축제 사생대회에 나갔다. 당선작에 버금가는 ‘가작’에 당선돼 놀랐다. 이때부터 흥미를 느껴 초등학교 내내 화판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잠시 화실을 다녔는데, 녹록지 않은 집안 사정으로 금세 접어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살다가 21살에 일찌감치 공직에 발을 들였다.

그림에 대한 갈증과 의욕은 세월이 지나서도 꿈틀거렸다. 비록 순수미술은 아니지만 유일한 미술계 야간 학과인 안양전문대학(현 연성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지원했다. 주경야독의 결과다.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이 그린 카툰.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이 그린 카툰.

졸업한 뒤 미술 관련 취업을 주임 교수가 주선했으나 어려운 가정생활로 그림의 꿈을 접고 공직생활에 매진하게 됐다.

팝송에 관심이 많은 그는 생활 속에서 틈틈이 팝 가수 관련 카툰을 많이 그렸다. 이를 본 음악 잡지사에서 계약직원으로 일해 달라고 요청이 왔으나 이 역시 집안 만류로 돌아섰다.

카툰과 캐리커처에 대한 집착이랄까. 몸 안 DNA가 원했다. 당시 이 분야는 누구나 생소했고 배울 만한 마땅한 정규 과정도 없었다. 유튜브가 없던 당시는 혼자 여기저기서 관련 책을 찾고 탐독하고 독학해야만 했다.

다른 미술 분야와 달리 A4 종이와 펜만 있으면그리기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 흥미를 갖고 주말마다 취미를 키워 나갔다. 

그저 남들이 그린 작품을 모작하고 습작하며 담금질했다. 여러 신문을 들쳐 보며 기사를 읽기보다는 시사만화를 챙겨 보는 습관도 갖게 됐다. 미국 저명한 시사만화가 ‘래넌 루리’를 존경하게 된 기회다. 그의 작품에서 전율과 경외심을 느낀다고 했다.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이 그린 카툰.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이 그린 카툰.

# 뛰면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시즌1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10여 년간 100여 점에 이르는 카툰과 캐리커처를 그렸다. 누구에게 보여 주고 인정받으려 하기보다는 신분이 공무원인지라 그린 그림을 자연스레 공직사회 내부망에 게시했다.

공직자 제1가치인 ‘청렴’을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고, 코로나19로 지친 담당 공무원들의 심신을 위로하는 따뜻한 그림도 올렸다. 우리 사회가 겪는 기후를 비롯한 환경과 최근 대두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안전문제를 카툰과 캐리커처에 옮겼다. 

그러던 중 그는 고심 끝에 전시회를 열었다. 자비 45만 원을 들였다. 지난해 1월 10일부터 2월 9일까지 시청 별관 2층에서다. ‘현직 공무원이 카툰으로 들려주는, 공직자!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이다. 카툰과 캐리커처 작품 38점을 전시했다.

‘청렴&코로나19, 공직생활, Byeond, FIFA 월드컵’이라는 4개 카테고리로 나눠 공무원과 시민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사실 아마추어 실력이라 시청 별관에 전시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공직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청렴’과 ‘코로나19’와 관련한 작품이 많아 어깨를 가볍게 했다. 

코로나19 지원 업무로 많이 힘들어하는 동료 공무원을 위해 코로나19 이전을 추억하며 조금이나마 힐링하고 서로 격려하는 시간을 보내자는 뜻을 담았다. 전시회 소제목도 ‘뛰면서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시즌1’이라고 했다.

카툰과 캐리커처를 본 동료 공직자들이 서로에게 글과 그림, 낙서로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자는 뜻에서 ‘공직자 여러분의 공간’이라는 대형 응원 패널도 마련했다.

공무원들은 "카툰과 캐리커처, 특색 있는 전시회를 보니 신선했다", "시청 별관 복도를 지나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코로나19와 청렴, 공직생활과 관련 있는 그림을 보니 마음에 훨씬 와 닿았다", "동료 공직자가 그렸다고 하니 신기하고 재미 있어 응원 멘트를 남겼다"는 글을 적었다. 한 시민은 "멋지십니다. 감동받고 갑니다. 안양을 사랑하는 어느 시민"이라고 남겼다고 한다.

구 팀장은 패널 여백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글을 보고 공직사회의 많은 변화를 느꼈다.

작품은 입소문이 나 시청뿐 아니라 만안·동안구청, 안양아트센터를 비롯해 지역 14개 공공기관에서 돌아가면서 전시했다.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이 연 ‘현직 공무원이 카툰으로 들려주는, 공직자! 우리들의 이야기’ 전시회.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이 연 ‘현직 공무원이 카툰으로 들려주는, 공직자! 우리들의 이야기’ 전시회.

# 적극행정 우수

작품은 ‘2022 안양시 적극행정’ 공모에서 ‘우수’로 선정됐다.

시는 현직 공무원이 직접 그린 카툰&캐리커처 전시를 극찬했다. 이처럼 색다른 방식으로 행정에 접목한 사례는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를 통틀어 전국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창의행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시상금 90만 원에 사비 10만 원을 보탠 100만 원을 지난해 7월 안양시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기부했다.

안양시가 청렴도 1등급을 달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여기는 구 팀장은 10년 뒤 전시회 ‘시즌2’를 마련한다.

안양시 적극행정 공모 포상금을 기부한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
안양시 적극행정 공모 포상금을 기부한 구희본 안양시 국제교류팀장.

# 축구 마니아

동료와 대화 중에 또는 안양천을 걷다가 작품 아이디어를 찾는다는 구 팀장은 축구 마니아다. 현지 응원은 지구 반대편도 마다하지 않는다. 삶의 최고 낙이라고 한다.

넓은 세상에서 세계인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아이디어도 찾는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남아공, 브라질, 러시아를 비롯해 대회 6번을 현장에서 즐겼다. 앞으로 현지 응원을 4번 계획해 모두 10번을 채우겠다고 한다.

# 4년마다 획까닥 미치는 공무원

그는 또 다른 인생사를 준비 중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일본 원정부터 지난해 11월 다녀온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24년간 월드컵 현장 응원 기록을 담은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4년마다 획까닥 미치는 공무원」이 책 제목이다.

월드컵 현장의 생생한 기록과 비하인드 스토리에다 이번에 전시한 그림을 섞어 한 편의 여행 일러스트책으로 만든다.

나아가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새내기 공무원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보는 청렴 이야기’를 주제로 공직사회 발전과 변화, 청렴 다짐, 청렴 공직자상 구현에 자그마한 보탬이 되고자 한다. 

안양=이정탁 기자 jtlee6151@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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