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 여는 글

산업화를 성공시킨 주체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 대한민국, 산업화·민주화·정보화 성공과 그 이유의 사람들’이다. 소위 박정희 모델로 평가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연속적 실천과 새마을운동에 적극적으로 신바람 나게 참여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박정희와 그 추진 세력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다. 지식인들, 정치인들은 각각 다른 평가들을 해 왔지만 비교적 비판적이거나 부정적 평가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평가 주체인 지식인들의 가치관이나 관념이 아니라, 역사 주체인 실생활의 담당자인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작동됐는가이다. 그들의 다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판단한다.  

한 시대, 한 흐름, 한 인물 또는 집단을 평가할 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평가에 적용한 ‘기준’이다.

앞에서 열거한 한국이 겪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 ‘생존의 유지’와 ‘생활의 충족’은 중요한 것, 절대적인 것이었다. 특히 민주, 인권의 평가 척도, 실현 기준에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발표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 정책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은 이후 시대에 이러한 성공 자산을 기반으로 민주화·정보화·세계화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근대화를 성공시킨 요인들은 무엇일까? 다음 6가지로 정리했다.

1. 한국의 자연을 산업환경에 적합하도록 변용시켰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특히 경기만이 있는 중부지역 이남은 산업사회에서 클러스터를 육성하는 데 여러모로 유리했다. 3면이 바다여서 세계화와 수출산업을 육성하는 일에 대단히 적합하다.

특히 세계 질서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대륙 국가들이었고, 반대로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은 해양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한국에는 매우 유리한 세계 질서였다. 

한국에는 인천·부산·울산 등 양호한 항구 조건을 갖춘 지역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업, 정유산업을 비롯해 수출에 적합한 자동차산업이 발달했다.

또한 당시 중요한 파트너였고 중계국가 노릇을 한 일본은 부산을 통해 아주 편리하게 연결됐다. 한국은 지형 특성상 산업도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기에 매우 유리했다. 때문에 정부는 해륙교통망과 이를 뒷받침할 다양한 종류의 인프라들을 건설했다.

2. 미국과 소련의 적대적 경쟁체제를 긍정적으로 활용했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 패권 장악을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을 넘어 정치, 경제, 군사뿐만 아니라 사상까지 포함한 전면적인 충돌을 벌였다. 2초강대국은 자국 체제에 동참하는 국가들을 적극 지원하며 모든 면에서 대리전을 펼치는 새로운 양식의 ‘New Great Game’이었다. 즉, ‘냉전(Cold War)질서’였다.

이러한 세계 질서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 민주주의 체제를 대표하고 수호하는 미국은 한국을 성공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더구나 이미 체제 간에 벌어졌던 대전쟁은 무승부로 끝났고, 휴전 상태에 놓인 남과 북은 강대국들의 대리전까지 겸해 경제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미국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 쪽에서 대한민국은 적대국가인 소련·중공과 직접 연결된 군사적 충돌지였다. 그러므로 미국 등은 대한민국 발전과 번영을 지원해야만 했다.

3. 신기술 개발과 활용에 적극적이었다.

자원 부족이라는 산업 발전에 결정적 약점을 극복하고자 신기술 개발과 활용을 적극 추진했다.

북한 지역과 달리 대한민국 영토는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근대 산업사회, 현대 산업사회에 필수적인 석유나 가스는 물론 철, 석탄 같은 지하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는 전기 생산에 필요한 수력자원조차 없었다.  

한국 정부와 발전 주체 세력들이 의지를 갖고 있다면 선택할 만한 조건은 하나였다. 즉, 부족한 자원을 대체할 또 다른 중요한 자원을 찾고 이용해야 했다. 이는 뛰어난 기술력과 그것을 운영할 재능 있는 인적 자원들이었다. 일부는 부정적인 현상을 낳기도 했지만, 기술력 개발과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정책과 국민들의 적극 호응은 결국 성공이라는 기적을 낳았다.

4. 민주주의 선택과 자유주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공유했다.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이 신분, 계급, 지식 유무, 재산의 과다, 종족 등에서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체제를 말한다. 자유주의는 모든 인간들이 구속받지 않고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기회를 보장받는 체제를 말한다.

이러한 사상과 체제를 선택하고 적극적으로 실현하면서 모든 국민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주권자 태도로 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신분도 없었고, 공산주의처럼 계도한다는 미명을 가진 고정된 권력단체인 ‘당(party)’도 없었다. 그렇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옆길로 빠지고, 자유와 민주가 왜곡되고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독재권력에 종속된 상태로 자유의지를 빼앗길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극복했고,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이러한 자본주의 장점 가운데 하나인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참은 다른 사회와 달리 발전에너지의 양을 증폭시키고 질을 높였다.

5. 현대산업과 현대문명에 적합성이 높은 문화와 구성원들의 성격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다.

조선시대부터 고착된 우리 민족의 성격과 문화는 소극적이고, 냉소적이고, 배타적이며, 게을렀다. 또한 한이 많이 맺혔으며, 신분과 계급 간에는 적대감이 맴도는 사회였다. 공동체 사회라고 변호하지만 신분과 계급의 차별이 극심했다.

그런데 이 시대에 들어와 숨겨진, 잃어버렸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열정적인 교육을 통해 이를 확장하고 양성하면서 많은 부분들을 변화시켰다. 즉, 양반걸음과 정적(stability)인 삶을 동경했던 과거와 달리 ‘빨리빨리’ 문화와 역동적(mobility)인 생활을 추구했다. 외국에 문호를 적극 개방하고, 지역과 조건을 막론하고 진출과 개척하는 사회문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이 아닌 ‘흥’, ‘좌절’이 아닌 ‘신바람’, ‘열정’이라는 민족문화와 민족성의 ‘원형’을 회복하고 더욱 고양시켰다.

속도와 변화를 핵심 기호로 삼는 현대문명의 과정 속에서 원자아를 수복하고 개화시킨 우리의 ‘속도감’과 빠른 성취욕은 성공에 아주 적합했다.  

6. 생물학적 우수성과 독특한 역사적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소위 한민족 구성원들은 생물학적으로 똑똑했다. 구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동서양의 외교관, 학자, 선교사, 여행가들은 대부분 그들이 경험한 조선사회와 조선사람들에 관해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주제로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조선인의 자질을 어떻게 평가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조선사람들의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기록했다. 물론 다른 견해들이 있지만 공통적인 평가는 조선사람들이 잘생기고, 체격이 좋으며, 머리가 좋다는 점, 특히 외국어를 습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농경사회는 육체의 힘과 부지런함만으로 승리하지만 근대 산업사회, 특히 현대사회는 생물학적 능력, 특히 머리가 좋아야 한다. 현대는 ‘근육의 시대’가 아니라 ‘머리의 시대’, ‘전통과 반복’이 아니라 ‘창조와 변형’이 중요한 시대인 셈이다.

21세기부터 본격화된 정보화 시대에 우리 민족의 생물학적 능력과 독특한 역사적 경험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 맺는 글

한국의 어려웠던 과거, 성공한 과정과 노력을 알고, 그런 원인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역할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고마움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 시대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더욱 발전하는 데 매우 유익한 정보와 태도를 알려 줄 수 있으며, 한국과 같은 성공을 기원하는 나라들에게 적합한 모델로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이 나아갈 길은 멀고도 많다. 참담한 실패를 거듭하는 북한 정권으로 인해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고, 산업화·현대화로 야기된 문제점들도 가능한 한 많이 해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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