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10여 년 전 스페인 여행길에 프라도미술관을 찾았다.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관람 중간에 4층 ‘램브란트관’을 찾았다. 미술에 깊은 조예가 없지만 오래전부터 책을 통해 ‘램브란트’라는 화가에 많은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은행 재직 중 말단 행원임에도 매월 발간되는 사보에 ‘한마디’라는 고정 칼럼을 올렸다. 당시엔 PC라는 문명의 이기가 자리하지 못해 원고를 작성하는 필기구가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자존심이고 애장품이었다. 아마 화가가 붓을 소중히 하듯 나 역시 만년필, 볼펜, 연필이 소중하고 아끼는 물품일 수밖에 없었다.

‘빛의 화가’, ‘정신적인 리얼리스트’라 불리며 명암법을 즐겨 사용했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램브란트가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잘 그릴 수 있습니까?"라는 제자의 물음에 "손에 먼저 화필을 잡고 시작하라"고 대답한 일화를 칼럼에 썼다.

십수 년 전 ‘압구정동 로데오지점장’을 하며 대한민국 최고 부유층들을 고객으로 거래하던 시절이었다. 외국계 은행이 경영권을 쥐고 정량적 평가 100%를 주창하며 숨도 쉴 수 없는 내부 경쟁 구도를 몰아갈 때 적어도 내 눈에는 마른 수건 쥐어 짜는 듯한 ‘머니 게임’, ‘카지노 논리’ 경영 행태가 감지됐다.

오로지 실적, 성과 목표 달성은 당연하고 지극하지만 조직을 숫자 하나로만 움직인다고 인식되는 순간 구성원들은 의식적으로 정서적 고갈 내지는 조직 분위기 자체가 실적 서열화로 천박해지는, 그야말로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 모두 다같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을 숫자로만 재단해서는 또 다른 매몰을 가져온다. 한 예로 당시 건설·토목업 리스크가 증대하자 모든 점포 건설, 토목업자 거래는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전국 산업별 추이를 살펴보면 분명히 리스크는 점증하고 수익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다고 영업점별·업체별, 규모나 기간 따위의 거래 상황이 각기 다른 양태로 나타나는데 상황별 대응이나 거래 이력 존중 같은 현장에서의 판단 기준을 그냥 흙담 허물듯 건설·토목업 거래 중지를 지침으로 내려보냈다.

새로운 시대 경영은 ▶사람 ▶가치 ▶브랜드 ▶비즈니스 모델인데, 당시 기업 대출 담당 전략은 분명 이 점을 누락시킨 아름답지 못한 결정이었다.

영업점마다 오랜 기간 금융거래의 진수를 보여 주며 파트너십을 유지해 온 건설 관련 단단한 거래처들이 황망하게 거래를 끊고 다른 은행으로 이관했다.

당시 필자는 경영진에게 한 장의 제안서를 띄웠다. ‘아름다운 경영’을 하라는 추상적 단어를 맨 앞에 던졌다. 숫자를 다루는 은행에서 그런 단어까지 내세워야 하는가? 주변에서 웃음거리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겠다 여겼지만 그런 지엽적 문제로 미래 가치, 본질성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영업점장의 소신이었다.

상황이 어려운 업체를 도우려 하루 종일 공장 현장에서 현황 분석에 매달릴 때 지점장이라고 가져온 중국요리를 옆 사무실 직원들 점심자리로 들여보냈다. 내 스스로 날 위한 산해진미가 직원들의 짜장면에 비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역시 몇 대를 이어 은행과 거래해 오며 건설업에 매진한 기업은 물론 지역사회, 국가적 과제에도 허물 없이 최선을 다한 기업들은 아름답지 못한 무분별의 경영이라고 여기며 거래 단절의 아픔을 분명하게 느꼈을 테다.

ESG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름다운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나눔과 배려, 도전 없이 ESG 경영이 가능한가? 이렇게 지구가 더워지고 기상이변이 속출하는데 전기, 수돗물 아끼고 플라스틱과 종이컵 덜 쓴다고 환경이 보호될까? 겉으로만 녹색가치 운운하며 세상살이 이치와 도리를 파괴하는 행위는 사회적 가치가 아니다. 

정도경영 역시 경영관리 이전에 자기관리가 우선돼야 한다. 보고서를 발간하고 해외 기관에서 증서 받고 단체에 가입하는 일이 ESG가 아니다. 기업 경영 가치가 삶으로 전이돼야 하며 종사자 한 사람, 고객 한 사람에게 하나하나 선의의 영향력을 행사할 줄 아는 CEO가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단단하게 개념을 정리한 후 보이지 않는 핵심 실천 사항을 이행해 가야 한다. 그러한 불가시적 주변 환경들은 ‘아름다움’이란 전제를 내세우지 못하면 ‘보이는 것’의 화장술에 그냥 넘어갈 수 있다.

CEO의 경영철학은 주변 관련인 모두에게 나침반 구실을 한다. 그만큼 제대로 된 아름다운 마음씨를 마음껏 사용해야 한다.

화가가 애장하는 붓을 마음껏 휘두르고, 작가가 느낌과 영감을 주는 필기구를 온 힘을 다해 쓰듯 ESG 경영은 반드시 ‘아름다운 실천 전략’이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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