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모든 행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큰 역할을 담당한 사람의 행위에는 ‘큰 책임’이 뒤따르고, 작은 역할을 담당한 사람의 행위에는 ‘작은 책임’이 뒤따른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일, 이것이 ‘윤리’와 ‘법’의 기본 요청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거나 책임지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든지 또는 가벼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가벼운 책임을 지운다면 ‘윤리’와 ‘법’이 제대로 작동됐다고 말할 수 없으며, 정의와 질서가 실종된다. 부연하자면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과 척도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책임 추궁에 엄정해야만 비로소 법치주의가 실현되고 합리적인 세상이 된다.

지난 역사와 작금의 상황을 보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책임을 지우는 일에 엄정하지 못한 사례가 많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친일행위로 동족에게 극심한 고통을 줬던 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이 철저하지 못했고,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독재정치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 줬던 군부세력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한 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세월호 참사나 10·29 참사 등 대형 인명사고에 대한 책임 추궁도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그 밖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금세라도 추상같이 책임을 추궁할 듯 요란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더욱이 어렵게 책임을 추궁했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복권’으로 풀어 줘 버린 사례가 많았다. 이런 식으로 국내에서마저 책임 추궁에 소홀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일제강점기 시대에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일본 정부가 "너희 나라 내부에서라도 책임을 제대로 물은 적 있느냐?"고 반박한다면 부끄럽기 이를 데 없을 듯싶다. 국내에서부터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외국에도 떳떳하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WP)와 대통령실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용서를 구하며)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발언을 접한 후 큰 충격을 받아 극도의 허탈감에 빠진 국민들이 많다. 가해국인 일본이 과거 만행에 대해 전혀 용서를 구할 자세가 돼 있지 않은 마당에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뻔뻔스러운’ 그들을 용서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국가와 국민의 존엄과 명예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피해자와 국민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대한 책임 추궁을 포기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는가 등등 여러 의문들을 제기하는 국민이 많다.

왜 우리는 책임을 추궁하는 일에 엄정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나 동종·유사한 가·피해 사례가 미래에도 반복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온정주의를 벗어던지고 차가운 가슴으로 책임 추궁에 나서야 한다. 독일 등 선진국에서 대형 인권침해 사건들에 대해 시효마저 배제하면서 엄정하게 책임 추궁에 나서는 사례들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책임 추궁이 소홀히 다뤄진 사례들이 많은 이유는 ‘온정적 국민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책임 추궁 역할을 담당하는 각급 기관들, 특히 경찰·검찰·법원이 자주 직무 수행을 방기한 탓도 있을 터다. 또한 이들 사정기관이 ‘제 식구 감싸기’ 내지 ‘법조카르텔’로 자신들에게는 너그럽고 타인에게만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사용한 특수활동비가 한 달 평균 8억 원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범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국민 인권을 옹호하는’ 검찰조직 수장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공정·충실하게 수행했는지 의문을 갖는 국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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