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인식된 프랑켄슈타인은 커다란 덩치에 큰 머리, 나사가 박힌 멍한 표정의 괴물로 잘 알려졌다. 이는 1931년 강렬하게 선보인 할리우드 영화 속 이미지로, 이후 프랑켄슈타인의 대표 모습으로 각인됐다. 그러나 그 괴물의 이름은 사실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괴물은 이름이 없다. 그저 괴물 혹은 피조물로 불릴 뿐이다. 그럼 프랑켄슈타인은 누구인가? 바로 그 인조인간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다. 영화 속 괴물의 강렬한 이미지가 제목과 결합해 오랜 시간 오해로 굳어진 셈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원조는 1818년 출판된 소설이다. 당시 스무 살이던 메리 셸리가 2년간 집필해 완성한 이 작품은 SF 장르의 효시로도 손꼽힌다. 원작 속 피조물은 영화에서 보여 준 단순한 살인괴물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피조물은 환대 받지 못한 세상 속에 던져진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에 괴로워하는 외로운 존재로, 작가 메리 셸리의 모습이 일정 부분 투영된 캐릭터다.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SF소설의 시초이자 고전으로 남은 위대한 작품을 창작한 메리 셸리는 과연 누구인지를 조망한 영화가 바로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다.

급진적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최초 여성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로 태어난 메리는 부모님 덕분에 여성인권이 인정받지 못하던 당시 사회 속에서도 다양한 공부를 했다. 다만, 정규교육이 아닌 서점을 운명하는 아버지의 책방에서 책을 읽고, 아버지와 책방을 찾은 문인들과의 직간접 교류로 성장했다. 안타깝게도 메리의 어머니는 출산 후 산고로 열흘 만에 숨을 거뒀지만 어머니가 남긴 책 「여성의 권리 옹호」는 딸 메리의 사상에 큰 영향을 줬다.

자신만의 시각과 목소리를 담은 작품을 출판하고 싶었던 16세의 메리는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퍼시의 기혼 사실을 뒤늦게 안 메리는 그와 함께 사랑의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2년 뒤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사랑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쉽지 않았다. 특히 초반 2년은 메리에게 잊을 수 없는 행복과 절망을 안겨 줬다. 특히 첫딸의 죽음은 메리에게 큰 고통과 상실감을 줬다.

그런 그녀는 18세가 되던 1816년 여름의 어느 날, 당대 유명 시인 바이런의 초청으로 제네바 별장에 간다. 며칠이고 비바람이 계속 되는 날씨로 인해 집 안에만 머물게 되자 바이런은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써 보자고 제안한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폭풍우 치던 밤, 우연한 제안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2년 뒤 1818년,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담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프랑켄슈타인 출판 200주년에 맞춰 개봉한 영화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작가 인생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상실의 아픔을 예술 창작으로 극복하고자 한 메리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 노력한다. 영화는 당시 사회상과 메리가 어린 나이에 겪은 여러 삶의 질곡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프랑켄슈타인’의 아픔이 많은 괴물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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