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수찬 인천중구문화재단 영종역사관장
견수찬 인천중구문화재단 영종역사관장

현재 짜장면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인천 선린동 공화춘’(등록문화재 246호)은 1908년 무렵 건축된 중국식 건물이다. 처음에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었는데, 훗날 산동 출신 화교 우희광(于希光, 1886~1949)이 매입해 중화요리점을 운영하면서 지역 명소가 됐다.

1907년 인천으로 이주한 우희광은 처음에는 인천항 근처에서 ‘산동회관’이라는 객잔(客棧)을 운영했는데,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중화민국이 탄생하자 중국에 "공화국의 봄이 왔다"는 뜻을 담아 1912년 업소 명칭을 ‘공화춘(共和春)’으로 변경했다.

우희광은 1917년 자신이 운영하던 공화춘을 현재 짜장면박물관 건물(선린동 38)로 이전하면서 본격 중화요리업을 시작해 유명 요리점으로 발전시켰다.

공화춘이 크게 번창하면서 1940년대 들어 건물 북쪽 부분을 크게 확장해 증축부의 1층은 창고로 사용하고, 2층의 증축부는 대형 연회장으로 사용하게 됐다.

일제강점기 고급 중화요리점으로 경인지방에서 명성이 높았던 공화춘은 한국전쟁 중 일시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휴전 후 우희광의 장남 우홍장(于鴻章)이 주식을 모두 인수하고 건물 나머지 서쪽 부분을 매입해 대형 중화요리점이 됐다.

1968년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통해 기존 활용하던 건물의 동쪽뿐 아니라 새로 매입한 서쪽도 사용하게 됐으며, 외벽을 타일로 치장하고 현판을 벽면에 직접 부착하는 등 외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내부도 서쪽 계단이 철거되고 2층에 대형 연회홀이 마련되는 등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후 공화춘은 1970년대까지 경인지방 5대 중화요리점의 하나로 그 명성을 유지했으나, 1980년대 들어 한국인들이 본격 중화요리업에 진출하고 차이나타운 일대 상권이 쇠락하면서 경영이 어려워져 1983년 문을 닫고 말았다.

공화춘이 폐업한 후 우홍장의 장남 우심진(于心辰)이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인천 중앙동에서 ‘중화루’를 공동 경영하며 가업을 잇기도 했지만 그의 사망 후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공화춘 건물은 폐업 후 한동안 주택과 창고로 사용되다가 이후 오랫동안 붕괴 직전 폐가로 방치됐는데, 2009년 인천시 중구에서 건물을 매입하고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이후 중구에서 짜장면박물관 건립을 계획하고 내부에 전시 공간을 마련해 2012년 4월부터 박물관으로 활용 중이다.

공화춘이 유서 깊은 중화요리점 건물이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짜장면을 메뉴에 포함해 판매했던 역사적 장소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내부에는 짜장면 유래와 변천 과정을 살펴볼 만한 전시물을 갖췄을 뿐 아니라 당시 접객실과 연회장, 주방 등이 재현돼 전성기 공화춘의 여러 면모를 함께 볼 수 있다.

이렇게 붕괴 직전이었던 공화춘이 살아남아 해마다 십수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 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시민들의 관심 속에 특색 있는 문화시설로 발전을 거듭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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