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건섭 기자.
엄건섭 기자.

35년 전인 1988년 7월 20일 ‘공정·책임·정론·진실’을 아로새긴 ‘기호정신’과 사훈을 앞세우고 부푼 꿈을 안고 출발했다.

당시 ‘기호신문’ 기자로 사령장을 받아 기호신문 출발부터 현재까지 여정을 함께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35주년인 현재 세상이 세 번하고도 반이 변한 셈이다.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아른거리며 지나간다. 이마에는 없었던 주름이 깊게 패였고, 어느 순간의 기억은 아무리 소환하려고 발버둥쳐도 오락가락한다. 기자는 지금껏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오직 기호일보에만 전념하면서 35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다. 유수같다는, 쏜살같다는 말이 실감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세월이 빠르다.

그간 가평 ‘시골’에서 용케도 잘 견뎠다. 근무하는 동안 겪었던 갖가지 어려운 일들과 내뱉고 들었던 이런저런 말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가끔 꿈을 꿀 때도 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기억은 가족처럼 정들었던 동료 기자들이 병마와 싸우다 끝내 세상을 등질 때였다.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기자들’이 여전히 보고 싶고 그립다.

강화를 담당했던 고(故) 조병용 기자는 "엄 기자! 인천대교 구경시켜 줄까" 하면서 자기 차로 기자를 태우고 인천대교를 건넜다. 생각만 해도 서글퍼서 눈물을 주체할 길이 없다. 걱정 많은 세상을 뒤로하고 근심 없는 하늘나라로 떠난 그가 푹 쉬었으면 좋겠다.

기호일보에서 35년간 근무하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오르지만, 취재 활동을 하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남북 분단 속에서 어렵사리 당국 승인을 받고 북한 땅을 밟았을 때였다.

북한 동명왕릉에서 북한 스님과 함께
북한 동명왕릉에서 북한 스님과 함께

18년 전인 2005년 10월 11일 평양 방문 당시(정동영 통일부 장관) 참관단 105명이 긴장 속에서 아시아나비행기를 타고 55분간 비행한 끝에 북한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을 열자 북한 관계자들이 비행기 트랩에 올라 일일이 얼굴을 확인하고 출입구에서 10명씩 사진을 찍었다. 이후 순안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김일성 동상으로 향했다.

북측 인솔자가 동상 앞에서 김일성 ‘원수님’에게 경례를 하라고 구령한다. 이때 엉겁결에 묵념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먼 산과 하늘을 쳐다보며 딴청을 피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북측은 북한 주민 10만여 명을 대집단 체조와 예술공연인 아리랑 공연, 웅장한 카드 섹션에 동원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으로 북한 사람들의 친절한 안내로 그 유명한 옥류관 냉면집에 가서 그동안 맛이 궁금했던 평양냉면을 먹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후 북측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아리랑 공연을 펼칠 운동장에 들어서니 말로만 듣던 거대한 운동장을 꽉 채운 북한 사람들 박수와 함성이 우리를 맞이했다. 각종 단체 공연을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저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해 봤고, 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일도 생각난다.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입장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입장

두 번째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중국 베이징에서 연 아시안게임에 가서 개막식을 참관하고 백두산(북한에서는 장백산이라고 부른다)을 방문했을 때다. 백두산 정상에서 기호일보 마크를 새긴 모자를 쓰고 대한민국 태극기와 기호일보 사기를 들고 북한 공안부 몰래 두 팔을 번쩍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자는 베이징 아시안게임 당시 태극기를 들고 첫 번째로 입장했고, 천안문 광장에서도 태극기를 들고 북한 사람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 얘기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호일보를 여기까지 이끈 한 사장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그는 기호일보가 어렵던 시절 푸념 한마디 하지 않고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대식구’를 건사했다. 한 사장의 인본 경영은 현재 기호일보가 지역언론 인터넷 검색 순위 4위라는 업적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더구나 한 사장은 기자가 병마에 시달릴 때마다 병문안은 물론 함께한 기자들이 임종을 지키며 끝까지 함께하는 의리파다. 그 정성이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호일보 가족들이 칭찬하는 소리가 쟁쟁하다. 어려운 가운데도 소년소녀가정을 돕고, 홀몸노인을 찾아가 위로하고, 점심 때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거리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보살피는, 타고난 봉사자다. 그래서인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성화 주자로 뽑혀 인천시를 국내외에 널리 알렸다.

백두산 정상에서 펼쳐든 기호일보 사기
백두산 정상에서 펼쳐든 기호일보 사기

기호일보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계속 발전하는 중이다. 그리고 기호일보 가족을 보살피고 회사를 운영하느라 고생하시는 공성택 상무께도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내 나이는 서른다섯’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흘러간 세월을 되돌리지 못해 아쉽기 그지없다.

기호일보 임직원 한 명, 한 명과 기호일보 애독자 여러분에게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가평=엄건섭 기자 gsuim@kiho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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