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석 인천대 명예교수
이재석 인천대 명예교수

제2차 세계대전 전 독립국이든 식민지이든 통일을 유지하던 나라 중 몇몇 나라는 종전 후 쪼개졌다.

인도는 종교 차이로 말미암아 인도·파키스탄·실론(현재 스리랑카)으로 분열한 후 통일을 포기해 오늘에 이르렀고(내쟁형 분열국), 독일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로 말미암아 외부의 힘에 의해 분단됐으나 통일을 지향하다(국제형 분단국) 1990년 재통일했다.

한국은 내쟁으로 분열하고 외부 힘에 의해 분단돼(복합형 분단국) 통일을 지향하나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2023년은 한국전쟁 휴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3년간 계속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으로 정지됐다.

1953년 체결된 휴전협정은 전쟁을 정지시켜 더 이상 전쟁의 참화를 막았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후 수립된 휴전 체제는 남과 북의 분단을 고정화시켰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휴전 체제 속에서 남북한은 분단의 고정화 과정을 밟았다. 남북한은 사회·경제적으로 전쟁피해를 복구하는 한편, 각각 독립적인 자기충족 경제 체제를 건설해 감으로써 뒤르켐(David Emile Durkheim)이 말하는 유기적 연대를 상실했다. 

정치적으로 남북한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주의 체제로, 북한이 북한 특유의 사회주의 체제를 갖게 됨으로써 유기적 연대를 상실한 채 적대하곤 했으며, 1991년 가을 유엔에 동시 가입해 남북한은 유엔에서 2개 국가로 행동하기에 이르렀다.

남북한은 과거 치열하게 체제 경쟁을 벌이면서 군사적 충돌까지 벌인 바 있고, 현재도 긴장 관계가 상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모두 내부에서 남북 관계를 특별한 ‘민족 관계’로 규정하고,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을 실천하며 통일에 대한 열망을 공개으로 내세워 왔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잠정적이지만 특별한 ‘민족 관계’란 개념은 남북한이 하나의 통일국가를 지향한다는 의지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통일의 길로 남북을 묶어 주는 실낱같은 희망의 한 가닥 끈이었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 주는 조짐이 나타난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이 대남 전략을 전면 수정하기 시작해 남북관계를 특별한 ‘민족 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한 듯한 조치와 조짐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 단적인 사례가 남북 대화 등 대남 업무를 관장하는 북한 기구들의 위상 실종과 종래 남북관계에서 사용하던 칭호 대신 ‘대한민국’이란 호칭 사용이다.(이에 대해서는 ‘장용훈의 한반도톡’, 연합뉴스, 2023년 6월 17일 참조). 북한이 대한민국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데 대해 앞으로 좀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반도가 더 위험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많다.

필자는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 사용은 남북관계를 민족 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하는 징표이고, 그 전환은 분열국가로 가는 큰 조짐일까 봐 더욱 우려한다.

일찍이 1871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배제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2개 분열 국가로 한동안 친밀하게 병존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통일을 모색했으나 1919년 9월 생제르맹(Saint-Germain)조약에서 국제연맹의 승인 없이는 합동을 금지해 통일하는 데 실패, 같은 게르만민족 국가이면서도 오늘날까지 분열국가로 남았다.

이에 비춰 볼 때 남북한 통일을 막는 국제조약이 없다는 점은 통일을 전망하는 데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 분열국가로 가는 듯한 조짐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 이후 오랫동안 통일국가를 유지해 왔고 장래 통일국가 실현을 염원하는 민족에게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위정자들과 국민 모두 통일로 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려는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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