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초빙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초빙교수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광이나 멋진 순간,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찍어 카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사진을 수정할 수 있는 앱을 휴대전화에 깔아 놓고 사진을 보정, 합성기도 한다. 소위 뽀샵으로 얼굴 잡티도 없애고, 배경도 바꾸고, 사진의 품질을 높인다.

멋지게 찍힌 사진을 보고 우리는 ‘야, 이건 작품인데’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예쁘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찍어내면, 뽀샵을 잘 하면 정말 작품이 되는 걸까?

회화(繪畵)는 작가가 자신의 혼을 쏟아내고 거기에 천재성을 더해 아름답게 창작된 것이라 하더라도 작품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말까 하는데, 기계가 포착한 어느 순간이 작품이 될 수 있는 걸까?

이러한 논쟁은 이미 유럽에서 100여년 전에 있었다. 독일의 국수주의적 경향을 띠었던 ‘라이프치히 신문’은 사진이 예술이 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신의 상(像)은 어떠한 인간의 기계를 통해서도 고정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취했다. "영감을 받은 신성한 화가가 상위의 명령을 받들어 기계의 조력 따위 없이 신을 닮은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는 것,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라고 여겼다. 신의 형상을 한 사람의 얼굴을 찍어 놓고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신성모독과 다르지 않게 봤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초상화를 갖고 싶어 했고, 화가에게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사진관으로 몰려들었다. 사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시기에 예술의 개념을 고정해 놓고 여기에 사진이 포함될 수 있냐 없냐 논쟁을 벌이는 것은 벤야민이 보기에 쓸데없는 일에 열정을 보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예술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이 사진과 영화와 같은 복제기술의 발전으로 혁명적이고 본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고 판단했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라는 그의 예리한 글은 예술을 바라보는 집단적 지각 형식을 바꿔놓았다.

앤디 워홀은 1964년 4월 뉴욕에서 사과주스, 케첩, 콘플레이크, 청소도구 등의 표시가 있는 상자들을 갤러리 천장까지 쌓아놓고 전시회를 열었다. 초청받은 사람들은 행사장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황당해했다. 그러나 워홀은 이런 전시회를 통해 예술의 전통적인 규칙과 본질을 뒤집어 놓으려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그의 그림 ‘마릴린 먼로’는 이런 특성을 잘 드러낸다. 

마르셀 뒤샹은 시장에서 구한 변기를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샘(Fountain)’이라는 예술작품이라며 전시했다. 변기통이 예술작품이 된다니! 무슨 기준에서 이런 행위의 결과물을 예술작품이라고 한단 말인가? 예술의 전통적 가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빈치, 보티첼리, 페르메이르, 고흐 같은 예술가들이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 예술작품으로 머릿속에 각인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특정한 방식으로 정의되면 예술가들은 그것을 무너뜨려 해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예술은 세상의 물질적 조건이 변화해 세상을 인식하는 지각방식이 바뀌면 그 개념도 바뀐다고 벤야민은 봤다. 예술의 이런 속성을 "예술이 제의(祭儀)에 바탕을 두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라고 그는 언급한다. 예술의 ‘아우라(Aura)’가 파괴되고 ‘제의가치’에서 ‘전시 가치’를 거쳐 정치로 옮겨가고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기술의 도움을 받아 사진 예술작품의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셈이다.

벤야민이 긍정한 사진 미학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창조의 세계로 질주한다. 그러나 사람도 화장을 많이 하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듯이, 포토숍을 하지 말아야 하거나 색상 보정 정도로 그쳐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사진에 어디까지 포토숍을 해야 할 것인가는 동시대인의 담론(談論) 속에 있다.

사진은 이렇게 포토숍을 해야 한다고 고정한다면 작가들은 또 다른 낯선 곳을 향해 달려 갈지 모른다. 사진의 ‘낯설게하기(defamilization)’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