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지난 7월 17일 오전 김진표 국회의장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75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통해 "최소 개헌을 원칙으로 삼아 다가오는 총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기를 기대한다"며 "대통령 4년 중임제, 국무총리 복수 추천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이상 3개 항에 국한해 헌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러나 입법부 수장이 큰맘 먹고 행한 이 제안은 여론과 언론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다. 즉, 사회적 호응과 반향이 거의 없는 셈이다. 김 의장의 제안은 세 가지 측면에서 합리성이 부족하다고 본다.

첫째, 시기적으로 부적합하다. 현재 국민들은 협치가 실종된 현실 정치에 식상한 상황인데, ‘개헌’이란 거대 담론을 불쑥 던져 놓고 오매불망하는 듯한 모습에 어리둥절해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개헌 추진을 시도했다가 국정 수행의 에너지만 소모하고 성과도 없이 유야무야됐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번에도 개헌 추진이 실패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또한 지금 ‘경제 활력 회복’ 등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가 산적한 상태인데, 개헌을 추진하게 되면 ‘블랙홀’이 돼 다른 국정 이슈들이 소홀히 다뤄질 염려가 크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개헌 필요성에 공감이 형성되지 않았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성을 높이고 안정적 국정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1987년 헌법 개정 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채택한 역사적 경위와 당위성을 고려하면 ‘5년 단임제’도 충분히 장점이 많은 제도다. 

또 ‘국무총리 복수 추천제(국회가 복수의 국무총리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추천된 후보 중 한 명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제도)’는 "국무총리가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책임총리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도 국무총리가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책임 있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끝으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보자. ‘불체포특권 폐지’는 "‘방탄국회’로 전락할 우려를 없애 준다"고 하지만, ‘불체포특권’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체포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 자유롭게 의정활동(국정 운영에 대한 ‘불신과 의심’ 제기 등)을 하도록 하고자 도입한 제도이기 때문에 여전히 존치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가 권위주의로 후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최근 홍콩·캄보디아·미얀마 사례 참조).

셋째,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주장에는 결정적 오류가 있다. 김진표 의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이제 민주주의가 성숙했으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언론 대담에서 "왜 불체포특권이 나왔나요? 군사독재 정권에서 야당을 탄압하기 때문에 헌법에 명문화시킨 거예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정치인·학자·언론이 "불체포특권은 과거 군사독재권력의 탄압에 맞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것인데, 현재는 의원의 비리를 비호하는 수단이 돼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한다.

그러나 이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불체포특권’은 군사독재 이후 도입된 것이 아니라 제헌헌법 이래 줄곧 명기된 제도다. 1948년 만든 제헌헌법 제49조는 "국회의원은 현행범을 제한 외에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하며,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되었을 때에는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고 규정했다(현행헌법 제44조와 내용 일치). 이 규정은 미국 연방헌법(제1조 제6항), 독일 헌법(제46조), 일본 헌법(제50조)의 불체포특권제를 우리 헌법에 도입한 것이다.

불체포특권은 1340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구금돼 의회에 출석할 수 없었던 의원의 석방을 명한 사례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기본적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공인(公人)들이 허위 사실 유포와 여론 호도를 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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