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해도 가깝게 지내는 선배와 만나 대학시절을 추억했다. 대학생 때부터 가장 많이 술잔을 부딪친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대화 단골 주제인 비판하는 사고 방법이라는 전공 수업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수업은 주마다 정한 책이나 논문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리포트로 작성한 뒤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당시 강의실에는 정답은 없으니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라는 교수 말에 따라 각자 생각을 말하고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를 꼽으라면 기자와 선배가 입을 모은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중 기호학이다. 기호일보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선배는 제호에 관심을 보이며 뜻을 묻고 기호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나눴다. 그만큼 수업 주제를 마음에 새겼고, 그 어떤 경험보다 생각을 틔우는 노릇을 톡톡하게 했다.

물건이나 감정에는 일컫는 단어를 붙인다. 예컨대 앉아서 책을 읽거나 사무를 볼 때 앞에 놓고 쓰는 상을 책상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기호학에서 책상과 사랑은 본디 생긴 그대로 타고난 상태를 뜻하지 않고 사회구성원들이 쓰기로 약속한 표시다.

당시 수업 주제를 받아 본 기자는 기호학을 소통을 편리하게 하려고 어떤 대상을 이해하도록 기호를 표시했다고 이해했다. 인간은 만물에 기호를 붙여 대상을 설명하려는 수고를 덜어냈다. 지금까지도 세상 빛을 보지 않은 표시를 꾸준히 만들어 내며 기호 편의를 누린다. 하나, 대상에 한 가지 언어를 정하다 보니 대상에 대한 표현이나 생각을 제한하기도 한다. 인간은 대상을 완벽하게 나타낼 기호를 정하지 못한다.

결국 사람마다 견해나 관점이 다르지만 약속한 기호로 소통하다 보니 온전한 생각을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기호학을 만난 뒤 기자는 세상에 옳은 답은 없다고 여긴다.

내뱉는 말 가운데 선택한 단어는 본질을 전부 담지 않기에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정답이 없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인 양 자신이 맞고 남은 틀리다는, 어쭙잖은 조언을 핑계 삼아 우기지도 억지 쓰지도 말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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