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하루 전날인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날(1991년 8월 14일)을 201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운영한다.

수원시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남다른 노력을 펼쳤다. 수원에서 활동했던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평화인권활동가 고(故) 용담 안점순(1928~2018년)을 지원하고, 그의 삶을 기록한 공간을 마련해 시민들이 아픈 역사의 가시를 기억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수원시민도 항상 함께였다. 수원시와 수원시민이 함께 역사를 기억하며 남긴 발자취를 다시금 새겨본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장안공원에서 열린 제11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에서 기념사를 했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장안공원에서 열린 제11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에서 기념사를 했다.

# 평화의 나비 된 고 안점순 할머니

"제발 싸우지 말고들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딛고 평화와 인권을 설파한 수원의 활동가 안점순 할머니가 남긴 말이다.

안점순 할머니는 나비 같은 삶을 살았다. 끔찍한 만행으로 소녀 시절을 짓밟힌 뒤 오랫동안 누에고치처럼 움츠려 지냈으나, 말년에는 고통스러운 피해를 드러내며 역사를 증언하는 아름다운 날갯짓을 했다.

1928년 서울 마포구 복사골에서 태어난 안점순은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효심 깊은 소녀로 자랐다. 열네살이던 날,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방송을 듣고 쌀가마에 올라간 소녀는 그대로 트럭에 실렸다.

울며 매달리던 어머니를 뒤로하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에게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지냈다. 지옥 같은 시간을 3년 살아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소녀는 전쟁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열아홉이었다.

피해자의 삶은 이후에도 순탄치 않았다. 남자가 싫어 결혼은 하지 않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난생활을 하며 생계를 위해 빨래와 식당일을 전전했다.

전국 각지를 옮겨 다니며 살아가던 그는 환갑이 넘어 조카가 있는 수원에 정착했다. 조카의 도움으로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는 했지만 마음의 문은 굳게 닫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지냈다.

안점순의 날갯짓은 일흔다섯이 된 2002년부터 시작했다. 피해자 인권캠프에서 피해자들과 아픔을 나눈 그는 수요집회에 참석하며 다시는 같은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국제기구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국제심포지엄에서 증언도 하며 인권활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안점순 할머니의 노력에 감명받은 수원시민들은 수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3월 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소녀상을 건립했다.

이를 계기로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수원평화나비’가 창립했다. 안점순 할머니와 수원시, 수원평화나비는 피해자 인권 회복과 평화운동을 위해 발을 맞추며 2017년 3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기도 했다.

이듬해인 2018년 3월 30일 안점순 할머니는 고단하지만 아름다웠던 삶을 마감했다.

수원평화나비가 매달 첫 번째 수요일 정오마다 수원 올림픽공원에서 여는 수요문화제.
수원평화나비가 매달 첫 번째 수요일 정오마다 수원 올림픽공원에서 여는 수요문화제.

# 수원평화나비, 기억하는 시민들이 만드는 미래

고통스러운 자신의 과거를 드러낸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에 의해 탄생한 ‘수원평화나비’는 생전 안점순 할머니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안점순 할머니가 "수원평화나비가 내 매니저야"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안점순 할머니가 영면한 뒤에도 수원평화나비는 활발한 활동으로 그를 기억하는 일을 쉬지 않는다. 지자체 단위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수원수요문화제와 평화인권교육이 그 핵심이다.

수원수요문화제는 수원평화나비 활동의 중심이자 살아 있는 역사다. 수요문화제는 2017년 5월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매월 첫 번째 수요일 정오에 열렸다.

지난 8월 2일 76회를 기록했는데, 지역 단위 수요집회가 진행되는 곳은 수원이 유일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았다.

주로 소녀상이 있는 올림픽공원에서 수원평화나비는 물론 경기평화교육센터, 수원YWCA, 수원참교육학부모회, 수원여성회, 수원시의사회, 수원청소년성인권센터, 지역 내 교회,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돌아가며 수요집회를 주관한다.

수원평화나비는 수원시민들에게 ‘위안부’ 역사의 아픔을 지속 알리는 평화인권교육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18년부터 자체 인권강사 양성과정 프로젝트를 시작, ‘위안부’ 피해자 인권에 특화된 강사를 양성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내용은 여성과 전쟁, 평화가 중심이다.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상징과 의미부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접하는 인권교육은 연간 50회 이상 진행돼 시민에게 기억의 중요성을 알리는 첨병 노릇을 한다.

더해 청소년평화나비 활동을 지원하고, 안점순 할머니를 비롯한 세계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노력도 쉬지 않는다.

김향미 수원평화나비 공동대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는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동안 주춤해진 청소년평화나비 활동을 되살리도록 활동을 집중하고, 인권교육의 중추 구실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수원평화나비가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에서 진행한 인권교육 프로그램.
수원평화나비가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에서 진행한 인권교육 프로그램.

# 수원이 기록한 역사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

수원시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을 딴 추모공간을 조성·운영한다. 안점순 할머니의 숭고한 발자취를 기록함으로써 그의 삶을 통해 후손들이 되새겨야 할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오래도록 전수하기 위해서다.

기억의 방은 수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진 안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 3년 만인 2021년 8월 문을 열었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문화관 1층 미술실로 활용하던 48㎡ 남짓 공간에 안점순 할머니의 발자취가 담겼다.

규모는 협소하지만 품은 이야기는 광활하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순이의 이야기와 수십 년 만에 세상에 나와 평화를 부르짖은 평화운동가 안점순의 이야기를 가득 채웠다.

기억의 방 입구에는 안점순 할머니의 흉상(기림비)이 관람객을 맞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소녀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수원지역 한 공동주택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기증했다. 

안 할머니의 초상화와 생전에 사용한 지팡이와 옷가지, 마작의 다양한 물건도 전시했다.

내부는 보랏빛으로 가득하다. 안점순 할머니의 삶을 상징하는 꽃 ‘용담’의 색이다. 용담의 꽃말은 ‘정의, 추억, 당신이 힘들 때 나는 사랑한다’로 알려졌는데, 아픈 삶을 정의로 승화한 할머니의 상징물로 삼는다.

왼쪽 벽면에는 할머니의 사진과 증언을 통해 기록된 생애 기록이 짧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벽 끝에는 쌀자루 무게를 재는 저울이 놓였다.

저울에 올라서면 프로젝터에서 영상이 시작된다. 쌀집 앞에서 영문도 모르고 강제 연행된 열네살 순이의 비극의 시작을 재연하는 장치다.

오른쪽 벽에는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순이의 경로가 표시된 지도도 마련했다.

안점순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한 관람객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메모를 남기는 소통 창구도 있다.

우체통 옆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보세요’라고 적힌 함의 버튼을 누르면 답장이 나온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남긴 말씀이다. "난 돈 싫어. 사죄를 하란 말이야(황금주 할머니)",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 살아야 해요(길원옥 할머니)", "다시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보고 싶어요(안점순 할머니)"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수원은 안점순 할머니와 시민의 저력으로 소녀상을 세운 역사가 있다"며 "수원평화나비를 비롯한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지난 10년간 노력해 준 덕분에 역사가 잊혀지지 않고 쭉 이어졌다"고 했다.

김강우 기자 kk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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