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는 결국 한국토지주택공사(LH) 퇴직자에 대한 전관 특혜가 주원인이었다. 지난 14일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천 검단 LH 아파트는 전관 업체가 지난 3년간 수의계약(설계용역 6건, 269억 원 규모)을 전량 수주한 사실이 드러났다. 모든(154개) 기둥에서 철근이 빠졌던 양주 LH 아파트도 설계와 감리(계약 7건, 217억 원 규모)를 전관 업체가 도맡았다. 오죽하면 LH 사장조차 "전관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토로했겠나.

LH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임직원 땅 투기가 불거진 2021년 때도 대대적 조치를 취했다. 전관 특혜를 근절하기 위해 취업 제한 기준을 임원(7명)에서 이해충돌 여지가 있는 간부직(500여 명)까지 확대했다. 퇴직자가 소속된 기업과는 퇴직일로부터 5년간 수의계약을 제한하고, 설계 공모나 공사 입찰 같은 각종 심사에서도 LH 직원을 배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별무소용이었다. 설계와 감리의 경우 재취업에 거의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준 자체가 느슨하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번 LH 사태에 대해 대통령은 ‘건설산업 이권 카르텔’을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LH도 공식 주장문을 통해 "공사의 명운을 걸고 건설 이권 카르텔 타파와 부실공사를 근절할 고강도 근본 대책을 수립하겠다"며 "설계, 심사, 계약, 시공, 자재, 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전관예우와 이권 개입, 담합 유발 원인을 근절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권 카르텔은 비단 LH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수원 원전 비리와 세월호 참사도 퇴직 후 유관기관에 취업해 특혜를 주고받는 관피아(원피아, 해피아)에서 비롯했다.

안타깝게도 이권 카르텔을 막을 현실적 장치가 부재하고, 이를 제한하는 규제(재취업 규정, 김영란법 등)의 실효성도 확신하기 어렵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도 있다. 해마다 퇴직하는 LH 임직원만 수백 명이고, 그 수요가 건설사·설계사·감리사 정도에 국한됐다. 채용 사유도 대부분 전관예우 특혜를 기대해서다. 한마디로 지대추구의 시작점인 퇴직자는 물 밀듯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외면한 채 막기만 한다고 근절될지 궁금하다. LH 소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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