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광복 78주년 기념으로 22일 광복회관 대강당에서 연당(硏堂) 이갑성(李甲成)지사 추모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연당은 1886년 대구에서 출생해 경신학교와 세브란스의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의학과를 2년 중퇴했다.

종교지도자를 민족대표로 통합하고, 학생들을 규합해 3·1운동 산파 노릇을 한 연당은 2월 28일 인쇄된 선언서를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 전파한 혐의로 징역 2년6월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서대문감옥에 투옥된 지 3년 2개월 만에 경성감옥에서 출옥한 1922년 11월 이승훈, 한용운과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해 활동했고, 1925년 흥업구락부 결성과 1926년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신간회에서 활약했다.

이후 일제 압박이 심해지자 상하이로 망명해 제중약국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하다가 귀국,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수년간 고초를 겪었다.

광복 뒤에는 입법의원을 거쳐 1950년 5월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고, 1965년부터 광복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한 후 1981년 별세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제1주제 ‘3·1운동 배경과 연당 이갑성의 역할’(국립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태룡 박사), 제2주제 ‘3·1운동 이후 연당 이갑성의 독립운동’(3·1운동기념사업회장 이정은 박사), 제3주제 ‘해방 후 연당 이갑성의 삶 재조명’(경희대 교수 허동현 박사)으로 심도 있게 진행됐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인 이태룡 박사는 재판 과정에서의 신문조서와 공판진술서를 분석하고, 연당의 제적등본을 당시 경남·전남 유력 인사와 비교 분석한 자료를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이정은 박사는 연당의 3·1운동 이후 국내외 행적 가운데 상하이에서의 활동상을 분석했으며, 허동현 박사는 광복 이후 연당의 정치 참여와 광복회 설립 과정에서 ‘밀정설’의 실체적 진실을 다뤘다.

한동식 기자 dsha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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