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공동체 생활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리더의 역할이다. 

리더십의 가장 전통적 이론은 독일계 미국인으로 현대심리학 분야의 선구자인 커트 르윈(Kurt Lewin)의 유형론이다. 그는 리더십에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조직의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서 한다. 반면 민주적 리더십은 문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리더와 구성원들이 함께 토론해 해법을 찾는다. 자유방임 리더십은 리더가 의사결정에 가능하면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빠른 변화와 다양성 시대인 현대사회에서는 리더십 종류도 변혁적 리더십, 섬김 리더십, 대인관계 리더십, 감성 리더십, 행복 리더십, 탈권위적 리더십 등 수많은 형태로 다양화됐다.

리더십은 목적과 상황에 따라 그 특성과 역할이 달라진다. 1852년 영국 해군 버큰헤드호(Birkenhead)의 알렉산더 세튼 중령의 리더십도 그 중 하나다. 

버큰헤드호는 군인과 민간인 634명을 태우고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 중이었다. 케이프타운에서 65㎞ 떨어진 바다를 지나던 2월 26일 새벽, 그만 암초와 충돌하고 말았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차가운 바닷물이 들이치는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 

완전히 허리가 끊긴 배에는 고작 3척의 구명정이 있었는데 1척당 60명, 전부 합해 180명밖에 탈 수 없었다. 병사와 민간인들의 공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때 배에 타고 있던 영국군 74보병연대 지휘관 세튼 중령은 병사들을 갑판에 집결시켜 놓고 큰소리로 "차렷!"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제군들은 들어라. 지금까지 가족들은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을 위해 희생할 때가 됐다. 어린이와 여자부터 보트에 태워라!" 하고 명령했다. 병사들은 횃불을 밝히고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3척의 구명정으로 옮겨 태웠다. 

마지막 구명보트에 사람을 태운 뒤 버큰헤드호는 점점 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세튼 지휘관과 병사들은 차가운 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판자에 매달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병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중령님의 지시에 한마디 불평도 없었습니다. 그 명령이 곧 죽음이라는 걸 알면서도…"라고 전했다. 

바로 이때부터 ‘어린이와 여성부터’라는 영국 국민의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버큰헤드호의 세튼 중령과 세월호 선장은 같은 최고책임자였으나 선택과 행동은 전혀 달랐다. 

2014년 세월호에서는 선내 사정을 잘 아는 선장을 비롯한 간부 선원들은 먼저 도망해 살아남았고, 사망·실종된 304명은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다. 외국 언론에서는 소속 해운회사 대표에 대해서도 ‘한국 기업 총수의 비겁한 리더십을 드러낸 사건’이라고까지 꼬집었다. 

리더십이 발휘된 버큰헤드호는 비록 침몰했음에도 영국인들에게 커다란 자긍심과 자랑스러운 전통을 안겨 줬으나, 리더십이 사라진 세월호는 우리에게 엄청난 자괴감과 무력감을 안겼다.

영국 작가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훌륭한 리더란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동지애를 갖추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위대한 리더들은 희생과 봉사 그리고 사랑을 실천한다. 국가, 기업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나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매우 어렵다. 특히 각종 재난과 위기 대응 능력, 안전불감증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수 없다. 

계속된 참사 때마다 보여 주는 또 그대로인 모습,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 아쉽다. 약자를 배려하고 직위 높은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직위가 곧 리더십은 아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생명 존중과 솔선수범에서 나온다. 절체절명 위기 앞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리더십이 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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