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오 편집국장
우승오 편집국장

8년쯤 지났지 싶다. 당시 기자가 속속들이 아는 A국회의원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한 사실이 입소문을 탔다. 당사자는 "넣어 둬"라며 극구 사양했지만, 나눔문화 확산이 주된 목표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어디 이런 굴러 들어온 절호의 홍보 기회를 놓칠 턱이 있겠나. 삼고초려, 아니 삼십고사무실(사무실을 서른 번 찾아갔다) 정도를 하고서야 벽창호 같은 옹고집을 간신히 꺾었다.

알다시피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1억 원을 기부하거나 약정하면 자동으로 회원이 되는데, A의원 기부는 여느 회원과는 성격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2006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의정비 전액을 기부해 당시 기부한 돈이 1억 원을 훌쩍 넘겼으니 지금쯤이면 좋이 2억 원은 넘고도 남겠다. 억지로 갖다 붙이자면 아너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정도 되겠다.

한데, 소가 웃다가 뒤로 벌러덩 자빠질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태 남을 위해 ‘10원 한 장’ 쓴 적 없는 치들이 그의 기부를 쇼, 즉 위선이라고 깎아내리느라 용을 썼다. 참으로 삿되고 무람없고 막돼먹은 짓거리다.

한때 아는 분이 곤경에 처해 법정에 섰다. 선처를 호소하면서 그간 사회봉사활동 중 대표할 만한 몇 가지를 부각했다. 선의가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이 그렇게 된 과정을 찬찬히 설명했다. 공감할 만한 구석이 꽤 많았다.

그런데 한솥밥 먹던 극소수가 이를 두고 비아냥거렸다. 그놈의 봉사 이력 신물이 난다고. 지겹다고. 모르긴 몰라도 그를 위선자로 몰고 싶었을 테지. 천 번, 만 번 물러서 설령 위선이라 한들 한평생 이어온 사회봉사가 뭐가 문제지? 적어도 위선마저 떨지 못해 순도 100% 악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족속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얼마 전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 씨마저 허위 작성 공문서 행사, 업무 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아들 조원 씨 기소 카드도 만지작거리는 모양이다.

앞서 조민 씨는 고려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상대로 낸 입학 취소 처분 무효 소송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조 씨 최종 학력은 고졸이 됐다.

만신창이·멸문지화·위리안치·조리돌림·회술레 따위 무시무시한 단어로도, 등활지옥·흑승지옥·중합지옥·규환지옥·대규환지옥·초열지옥·대초열지옥·아비지옥을 일컫는 팔열지옥이라는 등골이 오싹한 말로도 조국 전 장관 가족 처지를 1도 설명할 길이 없다.

조국 전 장관 가족에게 들이대는 이런저런 현행법 잣대와는 무관하게 기자는 누가 뭐래도 확신하는 바가 있다. 조 전 장관 일가족을 겨냥한 화살이 꽂힌 표적엔 ‘위선죄’와 ‘가식죄’만 똬리를 틀었다. 나머진 곁가지다. 그들을 단죄한 사실상 죄목이 그렇다는 얘기다.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 위선과 가식이 처벌 대상인지는 논외다. 그렇지 않고서야 법에도 분명 인정이라는 놈이 있을진대 어찌 이렇게까지 일가족을 도륙한단 말인가.

그건 그렇다치고 그들이 과연 위선 덩어리, 가식 덩어리일까? 공정이나 정의, 청렴결백을 좌우명으로 삼아 이를 실천하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들었지만, 때론 자신들이 자연스럽게 얻은 기회를 활용하면서 특혜 아닌 특혜도 누렸을 테지. 당연히 오롯이 선만을 실천하지는 못했겠지. 그들의 몸에 티끌도 묻었겠지. 그렇다고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해도 옳단 말인가.

다 좋다. 당신들 말대로 위선이라고 치자. 선을 꾸미는 까닭은 뭔가.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탓에 화장하듯 선인 양 꾸미지 않겠는가. 위선은 염치 있는 인간의 수오지심이 낳은 결과물이다. 악이 수치스럽다는 사실을 알기에, 선하고픈 강렬한 욕망이 위선을 부른다. 위선이 길어지면 그냥 선일 뿐이다.

유달리 요즘은 위선 쪽이 아니라 악 쪽으로 부등호 입을 벌리는 부류가 꽤나 많다. 같잖게도 위선을 나무라면서 대놓고 악을 행하는 이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위선이 싫다고 차라리 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감히 말하노니, 선에 쿠린내 좀 난다고 역겨운 냄새 진동하는 악을 고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지어다.

뜬금없이 시 한 편 모신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 고(故) 김남주 시인이 쓴 ‘종과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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