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시의회 예결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예결위원회 수석전문위원

UN에서 ‘기후 열대화’를 공식화한 2023년 뜨거운 여름!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하다 영화관을 찾았다. 마침 서너 편의 한국 영화가 여름 휴가시장을 겨냥해서 개봉한 차였다. 그냥 막 웃을 수 있는 가벼운 영화를 보러 가자 했건만 필자가 선택한 영화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였고, 불편하고 무거운 주제의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면서 느꼈던 뭔가 개운하지 않은 복잡 미묘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필자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어떤 지점을 향하는지와 상관없이 관람자 처지에서 이 영화를 해석해 볼까 한다. 영화는 극단적인 재난 상황에서 시작한다. 대규모 지진으로 서울이 초토화됐고, 그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한 서민아파트 단지가 주 무대다.

한겨울에 닥친 재난으로 그나마 멀쩡한 이 아파트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몰리지만,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난감해한다. 아파트 주민 이외의 사람들은 내쫓아야 한다는 의견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의견으로 분분했을 때, 대표를 뽑아 문제를 해결하자는 공무원(나름 신뢰할 수 있는 직업의 젊은이)의 제안에 모두 동의한다.

영화 속 주민들의 의식 속에는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이 자리했던 것일까! 그런데 이후가 문제였다. 주민들은 제대로 된 정보나 검증 절차 없이 우연한 사건(?)만을 보고 대표를 선출한다.

영화를 끝까지 이끌고 가는 대표라는 인물을 보면서 지금 우리를 대표하는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우리 권리를 그들에게 대표하게 했는가? 또한 우리는 어느 정도의 검증을 거쳐 그들을 선출했는가? 라는 질문을 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제한된 정보와 허술한 검증으로 대표를 선출해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같이 낯선 정치제도인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고 평가받는 나라는 물론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수백 년 동안 만들고 유지해 온 국가에서도 민주주의 위기가 심심찮게 거론되는 것이 최근 현실이다.

영화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대표가 결정하는 과정과 결과가 민주적 가치와 규범과는 동떨어지게 나타나 주민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이때 필자가 주목한 장면이 갈라치기다. 주민이 아닌 사람이 색출되고, 그 사람들을 돌봐준 아파트 주민은 무릎 꿇린 채로 인민재판을 받게 된다. ‘나’ 아니면 ‘적’ 혹은 ‘우리’ 대 ‘그들’, 이런 극단적인 갈라치기를 통해 대표는 자리를 유지한다. 주민들 사이에 대표에 대한 불만이 싹트고 번져 나가지만 누구도 힘껏 대항하지 못한다. 선출된 대표자이기 때문에, 이렇듯 아파트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보살핌과 협력은커녕 불신과 각자도생 사회로 바뀐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우리 공동체는 어떠한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는 당연히 여러 가지 균열과 갈등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건강한 공동체라면 갈등과 균열은 조정되고 통합되는 시스템을 통해 오히려 그 사회를 성장시키는 기제가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다양한 균열들이 결국에는 양극단화돼 엄청난 크기의 갈등으로 모아지는 모습이다.

세대와 성(性), 소득과 지역은 물론 소소한 사회 이슈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차이가 정치 혹은 사회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 아니면 ‘적’이라는 단 하나의 커다란 갈등으로 모아지는 게 현실이다. 전체주의적 정치·사회시스템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인류에게 해악이었듯이, 양극단화되는 정치·사회시스템 역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비관적인 모습만을 보여 주지 않았다. 최악의 재난 속에서 함께 살아남고자 애쓰는 인물들을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시키면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인물들의 좌절에 허탈한 한숨을 짓게 했으며, 주민 대표를 비롯한 집단적 광기에 맞서 판을 깨고자 하는 인물을 등장시켜 극적 효과를 더했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과 끔찍한 범죄가 이어지지만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다행인 점은 우리가 문제의 원인을 안다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양극단화를 막아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과 제도를 고치고, 차이를 인정하고 협력하는 우리 공동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결국 정치의 문제다. 우리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분들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