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솔 동국대학교 일본학과
최솔 동국대학교 일본학과

지난 24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해당 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이번 방류를 시작으로 2024년 3월까지 3만1천200t가량을 방류할 계획이고, 방류는 앞으로 30년 동안 이어질 전망이란다. 올해 봄부터 이어진 원전 오염수 방류 이슈에 대해 국민들의 수많은 비판과 반대 의견이 쏟아졌는데도 결국 오염수는 태평양으로 방류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오염수 방류가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서로는 한·중·일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도쿄전력이 제출한 자료와 시료 신뢰성부터 IAEA가 제시한 모니터링 범위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발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원전 오염수 부작용은 단순히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바다로 방류한 방사성물질은 물이 바다에서 하늘로, 다시 땅으로 순환하는 모든 과정을 거쳐 생명체에 축적하고 세대를 건너 전해진다. 한·중·일 많은 국민들이 이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까닭이다.

이런 문제점을 알았던 탓인지 원전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는 뉴스를 본 순간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모든 자연환경은 끝나 버렸다는 절망감과 패배감이 엄습했다.

앞서 말한 방사성물질 부작용은 분명 곧 시작할 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UN인권위 진정 접수’ URL을 공유하는 상황을 알게 됐다. URL에 접속하자 가장 위쪽에 진정 접수를 독려하는 문구가 있었다. "국민이 힘을 모은다면 막아냅니다. 국민 안전과 미래 세대가 공유하는 바다를 지키기 위한 UN 진정 서명에 동참해 주십시오."

문구를 읽자마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이미 시작한 짓을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진정을 제출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개인정보를 차례차례 입력했다. 어찌 됐든 하지 않는 편보다는 나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진정 접수를 하고서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이미 패배주의에 깊게 빠져 버린 셈이다.

그런데도 평생 꾸준한 불안을 안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더 나은 미래 따위는 없다고 포기하기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세상을 갈고닦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개인 힘으로는 도저히 이겨 내지 못할 듯싶은 부조리를 만났을 때 모두가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리라. 더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잃지 않은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현재를 누린다고 감히 생각한다.

30년 이상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에서도 독립을 꿈꾸는 사람은 넘쳐났다. 또 30년 이상 계속된 군사독재 시절에도 민주주의를 꿈꾼 사람은 쇠털같이 많았다. 결국 세상은 그들이 꿈꾸던 모습과 닮아갔다.

그렇다면 진정한 희망이란 절망을 오롯이 느낀 뒤에야 찾아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내 들끓던 분노가 차갑게 식을 만큼 전부 끝났다는 허무함과 허탈함을 인식해야 다음 단계를 생각하게 된다. 이로써 직시한 현실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목표가 필요한지 더욱 또렷하게 그려 나간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대해야 한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라는 말처럼 옳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는 동시에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 기대를 품어야 한다. 지금의 현실을 만들려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한 감사와 훗날 절망에 고통스러워 할 사람들을 위한 응원을 담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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