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홈페이지에 ‘칭찬합니다’ 게시판이 있다. 수원시민의 칭찬 문화를 확산하려고 만든 이 게시판에는 올해 1~6월에만 다양한 칭찬글 232건을 게시해 칭찬으로 소통하는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시는 이 중 가장 따뜻한 이야기들을 널리 알리려고 ‘최고 미담’을 뽑았다. 상반기 시민 칭찬글 가운데 조회 수와 공감 수가 높았던 3건을 대상으로 2주간 시민투표를 진행, ‘새빛톡톡’으로 시민 432명이 참여했다.

투표 결과, 장애아동을 키우려고 마음을 모은 어린이집(232표)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도왔던 스승 이야기(148표)를 최고 미담으로 뽑았다. 학생·부모·교사가 서로 신뢰하고 어우러지며 빚어낸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시민 마음에 닿은 셈이다. 

수원시민이 칭찬하고, 수원시민이 뽑은 상반기 최고 미담 두 가지를 소개한다.

올해 상반기 수원시 최고 미담 주인공 시립광교2동 어린이집 이종금(왼쪽) 원장과 칭찬글 작성자 김수련 씨가 함께 웃었다.
올해 상반기 수원시 최고 미담 주인공 시립광교2동 어린이집 이종금(왼쪽) 원장과 칭찬글 작성자 김수련 씨가 함께 웃었다.

# 장애아 보육에 온 힘을 모은 사람들

"장애아와 가족들에게 차별 없이 따뜻한 보육환경을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상반기 수원시 최고 미담으로 뽑힌 사례 주인공은 시립광교2동어린이집을 이끄는 이종금(56)원장과 교사들이다. 이들을 칭찬한 사람은 올해 초 해당 어린이집을 졸업한 장애어린이 조부모 김수련(61)씨다. 그는 시립광교2동어린이집과 만남이 ‘천운이었다’고 기억한다.

지난해 3월 뇌전증과 발달장애를 앓는 손주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적응하지 못하자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던 김 씨는 고민에 빠졌다. 개학을 앞두고 새 가방까지 받아 돌아왔지만 담당 선생님의 근심 어린 표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어깨가 축 처진 채 동네를 산책하던 그의 눈에 인근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노는 어린이와 교사가 들어왔다. 다짜고짜 선생님 손을 붙들고 아이를 받아주겠느냐고 물었다.

특수반을 운영하던 시립광교2동어린이집은 마침 입소를 결정했던 한 장애아가 갑자기 등원하지 않기로 해 한 자리가 남은 상황이었다. 즉시 상담한 뒤 곧바로 입소 대기와 입소 확정 절차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렇게 어린이집과 운명 같은 인연을 시작했다.

이후 아이는 안정감을 얻었다. 외부에서는 음식을 잘 먹지 않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도 잘 먹기 시작했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얼굴 표정이 편안해졌다. 잠도 잘 자고, 발작 증상도 거의 없어졌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늦게 데리러 오면 많이 울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늦게까지 지낼 정도로 적응하게 되자 일하는 시간도 늘렸다.

이종금 원장과 교사, 학부모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이종금 원장과 교사, 학부모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시립광교2동어린이집은 장애아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적응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원장과 교사들이 합심해 도자기 만들기를 비롯한 일반 어린이들과 장애아가 모두 좋아하는 활동을 찾아 체험으로 제공하고, 아이 상태 관찰에 도움을 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장애아를 키우며 따가운 시선을 많이 받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가족은 웃음을 찾았다.

1년이 지나 졸업이 다가오자 김 씨는 조금 더 어린이집에 다녀도 되는지 어린이집과 의논했다. 장애 통합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특수교육에 관심이 많던 이종금 원장은 가족의 마음으로 함께 가족 미래를 고민했다. 결국 제때 초등학교 진학을 권유해 고민 끝에 세상 속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찾던 김 씨는 수원시 칭찬합니다 게시판을 생각했다. 그는 "원장 선생님뿐만 아니라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 모두 장애아가 함께 지내는 교육 방향을 고민해 주셨다"며 "최대한 잘 적응하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리고, 다른 장애아들도 똑같은 교육을 누릴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칭찬을 받은 이 원장은 "시립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공보육 신뢰를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큰 칭찬으로 상까지 받게 되니 보람이 크다"며 "뿌듯한 마음을 자양분으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했다. 이어 "장애아도 보듬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환원도 고민하면서 다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 선한 영향력을 잇는 스승과 제자

"선생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갚으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두 번째 미담 주인공은 오래전 따뜻한 가르침을 전한 스승 이양호(77)씨와 이를 잊지 않고 실천한 제자 김도영(62)씨다. 이들 만남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수원 한 사립 여자중학교에 이 선생님이 담임을 맡은 2학년 1반에서다.

당시는 분기별로 등록금을 납부하고,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 대놓고 망신을 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김 씨는 새벽엔 우유 배달을 하고 오후에는 석간신문 배달을 해도 등록금을 모으기 어려웠다.

최고 미담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이양호(오른쪽) 선생님과 제자 김도영 씨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최고 미담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이양호(오른쪽) 선생님과 제자 김도영 씨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1학년 내내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한 데다 2학년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늘 자퇴서를 품고 다녔고, 언제까지 납부하겠다는 거짓말을 계속하지 못한 어느 날 결국 교무실로 불려 갔다.

교무실에서 쭈뼛거리며 자퇴서를 내밀자 담임 이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찢어 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꿀밤을 때린 선생님은 "너만 어려운 줄 알아? 세상에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나무랐다. 이어 "나한테 빚졌다고 생각 말아. 나중에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면서 살아"라는 말을 덧댔다.

이후로는 김 씨가 수업료를 못 낸다는 이유로 혼이 난 적이 없었다. 선생님이 친구들을 앞세워 가정방문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가끔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키고는 심부름값이라며 빵을 주기도 했다. 불량한 학생들이 괴롭힐 때도 선생님 호의를 생각하며 버텼다. 그렇게 무사히 학교생활을 마쳤다.

이 선생님은 "그때가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돈 얘기 하기가 가장 어렵고 싫어 호소 아닌 호소를 했던 기억이 난다"며 "칭찬을 받을 정도로 인자한 편은 아니었는데 부끄럽기만 하다"고 했다.

김 씨는 스무살이 넘어 직장생활을 시작하자 드디어 선생님 가르침이 마음에서 꽃을 피웠다. 중학교 때만 해도 자신보다 힘든 사람이 없어 보였지만, ‘나에게 갚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살라’는 가르침이 강한 중심점이 됐다. 김 씨는 소년소녀가정 돕기 자매결연을 시작으로 장학회 기부를 실천 중이다. 또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공헌하면서 마음의 빚을 갚으려고 노력했다.

더 성공해 선생님을 찾아뵙겠다는 생각으로 지내던 김 씨는 지난해에야 수소문 끝에 선생님 연락처를 알았다. 너무 늦게 인사드려 죄송하다는 제자에게 스승은 찾아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스승과 제자는 추억을 공유하고 감사함을 나눴다. 교장까지 지내고 퇴직한 이 선생님은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학생들을 기록해 둔 수첩에서 김 씨를 찾아 보여 줬고, 학교 연혁을 담은 책자를 펼쳐 함께 추억도 나눴다. 이후 김 씨는 이 선생님이 자주 시간을 보내는 동네 경로당에 간식거리를 사 들고 한 달에 한 번씩 안부 인사를 전한다.

이 선생님은 "다른 교사들과 별반 다름이 없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감사함을 표현해 주는 제자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영광스럽다"며 "그런 마음을 먹고 잘 성장해 줘서 멋있다"며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제자를 바라봤다.

김 씨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뭐가 됐을지 모르겠다"며 "선생님의 진정한 제자 사랑으로 제가 바르게 살았듯이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한편, 수원시는 상반기 최고 미담으로 꼽은 두 사례 대상자에게 우수시민 표창을 한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사진= <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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