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살아가면서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건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어느 분이 오래전 열악한 환경이었던 강원도 정선의 탄광촌 중학교에서 가정 형편으로 인근 공고로 가려던 자신을 선생님이 부모님을 설득해 도회지로 보내셨고, 그 후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전 산업훈장을 타게 됐다고 하셨다. 아마도 그 선생님은 제자의 가능성을 알아보셨으리라. 그는 그동안 코로나로 찾아뵙지 못했던 86세의 연로한 선생님을 뵙고 돌아왔고, 지금은 몸담았던 곳을 퇴직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노래를 열심히 부르며 인생 후반전에 도전한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이처럼 스승과 제자의 가슴 뭉클한 정을 담았다. 특히 음악계에서 스승은 인생의 부모와도 같다. 실력 있는 선생은 부모보다 훨씬 더 정확히 아이의 천재성을 발견한다. 이 영화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블라드미르 호로비츠(1904∼1989)’를 동경하며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유학을 가지 못하고 교수에게 아부도 못하는 성격으로 꿈을 접고 변두리 피아노학원 선생이 된 지수가 학원으로 이사 온 첫날 메트로놈을 훔쳐 달아난 경민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경민은 부모님을 사고로 여의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할머니에게 온갖 구박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말썽만 부리는 천덕꾸러기다. 유일한 혈육인 늙고 병든 할머니는 자신이 죽고 나면 혼자가 될 손자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호되게 대한다. 그래서 경민은 더욱 사람의 정이 그리웠다. 피아노가 경민의 친구가 됐고, 경민에게 절대음감이 있음을 발견한 지수는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피아니스트의 꿈을 경민에게 쏟으면서 제자가 아닌 엄마와 아들 같은 존재가 돼 간다. 

그러나 경민은 콩쿠르 무대 조명이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때 비췄던 헤드라이트 공포로 다가오면서 피아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린다. 경민이 힘들어할 때마다 지수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aumerei, 꿈)’를 연주하며 상처를 치유해 준다. 지수는 경민의 할머니가 죽자 경민을 양자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자 할 수 없이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친구를 만나 의논한다. 하우스 콘서트에 초대된 날 경민의 연주가 독일인 교수 눈에 띄게 되고, 유학을 권한다. 지수는 경민이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독일 입양을 결심한다. 입양 보내고 난 후 창가에서 홀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며 마음을 달랜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경민이 훌륭한 연주자가 돼 귀국 연주회를 연다. 연주하는 곡은 바로 자신의 스승이자 어머니인 지수가 꿈꿨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가 생전 즐겨 연주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이었다. 완벽하게 연주하는 경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지수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고, 이는 오직 지수에게 바치는 헌정 연주회였다. 경민의 손가락에는 지수가 입양을 보내면서 끼워 준 반지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좋은 스승이 되기도 어렵고 좋은 제자가 되기도 어렵다. 하지만 요즘 뉴스에서 많은 사건들을 보면 사라지는 사제 간 사랑이 아쉽기만 하다. 단순한 스승과 제자 관계를 넘어 인간애라는 본질을 잊지 말아야겠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