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식 편집부국장
한동식 편집부국장

"아이 적 늙은이 보고 백발을 비웃더니/ 그동안에 아이들이 날 웃을 줄 어이 알리/ 아이야 하 웃지 마라 나도 웃던 아이로다."

조선 중기 때 문신 ‘신계영’이 쓴 시조 ‘탄로가’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자신의 외모를 보며 젊은 시절 노인을 보며 웃던 자신이 이제는 노인이 돼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야 하는 처지에 놓인 현실을 탄식하며 지은 연시조다.

시간은 사람 힘으로 막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아이에서 노인이 된다.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음을 맞음이 자연 이치다. 고전 시뿐 아니라 현대 시에도 늙음을 한탄하는 글이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다. 고려 말 성리학 기초를 닦은 ‘우탁’도 어느덧 백발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의 덧없음과 늙음을 안타까워하며 ‘탄로가’를 지었다.

늙음이 안타까운 점은 단지 흰머리가 늘고 탄력 없이 주저앉는 외모의 노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의학 발달로 건강수명이 늘었고, 피부 탄력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정년이 되면 평생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떠밀려야 하는 일자리 상실이 더 두렵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젊은이만큼의 움직임이나 아이디어를 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또한 당연한 섭리라고 한다.

하지만 건강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일자리 수요는 더 커진다. 내년에는 노인인구 1천만 명 시대를 맞는다. 그런데도 노인에게 배정한 일자리는 88만여 개에 불과하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일자리가 필요한 노인 숫자를 꼽는다면 그보다 몇 배는 많을 터다. 생계형 일자리가 기초수급자 문제만이 아니라 정년으로 일터를 잃는 대다수 노인들은 생계가 막막한 현실에 부딪힌다.

평생 연금보험에 가입했다고 해도 퇴직한 뒤 2~3년이나 지나야 받는다. 그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퇴직금을 탕진하며 살거나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생계를 유지하려고 연금을 법정 수령 시기보다 미리 당겨 받는 ‘조기 노령연금’을 이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제도를 이용하면 연간 6%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일찍 수령하는 대신 손해를 보는 구조다. 정년과 연금 받는 시기가 맞지 않아 노후생활이 어려운 이들의 소득을 보장하려는 취지로 1999년 도입한 조기 노령연금은 1년 일찍 받을 때마다 월 0.5%씩 연금을 깎아 5년을 당겨 받으면 최대 30% 감액한 연금만 받는다. 월평균 268만 원 소득에 20년 연금에 가입한 65세 가입자가 최초 수급 때 월 54만 원을 받지만 1년 앞당기면 51만 원, 5년 앞당기면 38만 원으로 줄어든다.

환장할 노릇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정년으로 직장을 떠나야 하는 처지도 서러운데 평생 모은 연금까지 깎아서 살아야 하니 말이다. 이렇게 연금 감액에도 조기 노령연금 수급자 규모가 해마다 증가하는 까닭에 국민연금연구원 ‘조기노령연금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는 ‘생계비 마련’이 가장 많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다. 정부가 정년과 연금 수급 시기를 맞춘다면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이들이 손해를 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준다는 말이 나올 법한 제도다.

무엇보다 고액 연봉자가 아닌 이상 연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생계에 그리 큰 보탬이 안 된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들의 평균 연금 수령액이 62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올해 초 발표한 ‘2021년도 고령자 경제생활과 노후 준비 실태’ 보고서를 보면 노후에 기초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부부 월 198만7천 원, 개인 124만3천 원이다. 연금액 62만 원으로는 한껏 오른 대출이자를 갚으면 그만이다. 일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

따라서 정년을 앞둔 이들은 최근 정부와 노동계의 정년 연장 논의에 관심이 쏠린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는 물론 노인인구 1천만 명 시대에 정년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못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서다.

한국노총은 최근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법정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높이는 내용의 법 개정을 제안했다.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넘는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 차지) 진입을 앞두고 현재 60세인 정년을 연장해 노인 소득 공백을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국민연금 수령 나이는 올해 63세에서 2033년이면 65세로 올라간다. 정년 연장이 최선의 고령자 고용 대책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정년 연장만 고집하지 못하는 까닭은 젊은이 일자리가 너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봉 많고 복지 좋은 일자리를 나이 든 이들이 ‘더 오래 해 먹겠다’는 이기심으로 들릴까 봐서다. 그래서 나이 듦이 안타깝다. 아무튼 정년 연장은 노인 욕심이 아니라 사회에 더 이바지할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세대 간 또는 노동 주체 간 대화가 더 필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미래를 염두에 두고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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