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애정의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화의 감정’입니다. 애정의 감정으로 대하면 즐거운 기분이 들고, 그것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깁니다. 마치 아름다운 꽃을 봤을 때 드는 감정과도 같습니다. 이때는 행동을 신중히 하게 되고 조심스럽게 그것을 다룹니다. 애정의 감정은 이렇게 대상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대상과 나를 하나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화의 감정으로 대할 때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산책 중 지렁이가 보입니다. 즉시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고, 재빨리 그곳을 피해 지나갑니다. 이처럼 화의 감정으로 대하면 그 대상을 거절하려는 태도가 형성됩니다. 

이렇게 어떤 대상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애정이 생기고, 거절하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때는 화의 원인을 대상에게서 찾곤 합니다. 만약 지렁이를 보지 않았다면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어떤 대상을 내 마음이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태도가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렁이 자체가 징그러운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징그럽다고 결정했던 것이죠. 만약 우리가 의도적으로라도 지렁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으면 그 순간부터는 애정의 감정으로 대할 수 있고, 그때부터는 지렁이를 우호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치가 인간관계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늦은 시간에 귀가하던 여성이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서는데 누군가가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낀다면 그때는 화의 감정이 올라옵니다. 다가올 위험을 감지하고 예방하려고 그런 것이지요. 이렇게 화의 감정은 나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상황이 아닌데도 화의 감정으로 사람을 대할 때 발생합니다. 애정의 감정으로 대할 때는 화목해지고 신뢰도 깊어지지만, 화의 감정으로 대하면 미움이 커지고 불신감도 더욱더 깊어집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미워하고 거절하고 싶은 대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사랑받는 존재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렁이가 징그럽다며 피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낚시꾼에게는 지극히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좋은 미끼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똑같은 지렁이를 두고 왜 이렇게 감정이 달라지는 걸까, 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쩌면 지렁이 자체가 징그러운 게 아니라 내가 화의 마음을 선택해 징그럽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요?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누군가는 애정의 감정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화의 감정으로 대한다는 것이죠. 

이 점을 깨닫게 되면 인간관계가 돈독해지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외부 영향 때문에 감정이 생기겠지만 어떤 감정을 선택하느냐가 나에게 달렸다는 말은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내가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만 바꾸면 되니까요.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부러라도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바꿔 보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애정의 감정이 올라오고 동시에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신뢰하는 관계로 이어집니다.

화의 감정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달라진다」(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에서 저자는 ‘옳은 혐오’와 ‘옳지 못한 혐오’로 나눕니다.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뜻하는데, ‘옳은 혐오’는 진정으로 나쁘고 불쾌한 것을 싫어하는 그야말로 더없이 건강한 태도여서 인간이 위험이나 위기에서 자신을 지키는 감정이지만, ‘옳지 않은 혐오’는 다른 분위기나 환경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고 즐거웠을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남 탓을 하며 자신의 화를 달래려 하는 것이지요. 이는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서로를 불신의 늪으로 밀어넣곤 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바로 나의 ‘옳지 못한 혐오’입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능한 한 ‘옳은 혐오’로 나를 지켜 나가고 ‘애정의 감정’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행복을 부르는 비밀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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