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8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농업협동조합법(이하 농협법이라 한다)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계류(통과 보류)시켰다. 이 개정안은 ‘중앙회 무이자자금 운용 투명화’, ‘비상임조합장 연임제 개선(무제한→2회까지로 제한)’ 내용을 담아 농협의 건전한 운영에 기여하리란 기대를 받았다. 

그런데도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주된 이유는 중앙회장 연임 관련 개정 내용(단임제→연임 1회 허용)에 대해 일부 의원들이 "농협의 건전한 운영을 담보하기 어렵다", "연임 1회 허용 조항을 현임자에게 적용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통과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여야 간사들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계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국회 법사위는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법적 측면에서 그 당위성을 몇 가지 거론해 본다.

첫째, 국회 법사위는 소관 상임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논의결론(입법정책적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 국회법 규정(제37조 제1항 제2호 아목)에 따르면 법사위는 ‘법안의 체계·형식·자구 심사’를 소관한다. 그런데 중앙회장 연임 관련 개정 내용(단임제→연임 1회 허용)을 현임자에게 적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미 소관 상임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충분히 논의한 후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는 판단 하에 ‘현임자에게도 적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5월 11일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요컨대 중앙회장 연임 관련 개정 내용을 현임자에게 적용할지 여부에 대한 문제는 법사위 소관인 ‘법안의 체계·형식·자구 심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이는 ‘법리(法理)에 관한 사항’도 아니고 ‘입법정책(立法政策)에 관한 사항’이다. 따라서 법사위는 소관 상임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논의결론을 존중해야 함이 마땅하다.

둘째, 개정 내용(단임제→연임 1회 허용)을 현임자에게 적용 배제하는 건 ‘헌법 위반’ 소지가 크다(현임자의 ‘직업의 자유’와 농협의 ‘결사의 자유’ 침해).

셋째, 개정 내용(단임제→연임 1회 허용)을 현임자에게 적용 배제하는 것은 민주적인 선거에서 필요로 하는 ‘개방성(Openness)’과 ‘공정성(Fairness)’을 위배한다. 선거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려면 입후보를 희망하는 자들에게 ‘자유롭고 공평한 입후보 기회’가 보장돼야 하며, 선거권자에게 ‘심판 받을 균등한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선거권자의 선택 기회 보장). 만일 개정 내용(단임제→연임 1회 허용)을 현임자에게 적용 배제한다면 이는 평등권을 침해하는 꼴이다.

넷째, 임기제 직위의 연임 제한 규정을 완화할 경우에는 ‘현임자에게도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 법리에 부합하며, 일반적인 입법관례다. 법을 개정할 때 ‘규제를 완화하거나 편익을 주는 규정’은 현임자에게도 적용하도록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제도 개선 효과를 ‘즉시 반영’토록 하는 것이 ‘공적·사적 편익 증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법 개정의 취지에 부합). 형법 제1조 제2항·제3항의 취지와 내용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중앙회장의 권한 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투명성 확보’ 등)가 개정안에 반영됐고, 종전 법 개정에 의해서도 회장의 권한이 제한됐기 때문에 운영의 공정성 확보가 과거보다 개선·확충된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헌법 제128조 제2항의 취지를 유추·확대 적용하는 것은 법문해석상 불합리하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헌법개정 발의권’을 가진 대통령의 ‘무리한 정권 연장’ 시도를 막기 위해 특별히 명문규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중앙회장 선거 방식이 변경(대의원에 의한 간선제→전체 조합장에 의한 직선제)됐기 때문에 현임자도 ‘새로운 방식의 선거’에 입후보할 기회를 부여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중앙회장 선거에서 현임자를 선택할 것인가 또는 다른 입후보자를 선택할 것인가는 선거권자인 조합장들이 종합 판단·결정하도록 하는 게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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