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시니어들이 도전하고 싶어 하는 파미르 트레킹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은퇴라는 새로운 인생의 변화를 어떻게든 소화하면서 지나온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굳이 오지 체험을 택한 까닭은 편안한 관광보다는 어려운 여행이 성찰과 다짐에는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다. 60대부터는 무엇보다 건강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나의 건강 관리가 어느 정도인지 파미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은퇴한 뒤 나의 삶의 방식과 콘텐츠를 어떻게 수정하고 보완할지 원점에서 다시 한번 설계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파미르 트레킹 전과 후, 나의 인생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여섯 차례에 걸쳐 도전기를 연재한다.

4천600m대 높이의 악바이탈 고개에선 구름이 손안에 잡힐 듯하다.
4천600m대 높이의 악바이탈 고개에선 구름이 손안에 잡힐 듯하다.

국내에서도 트레킹보다는 테니스 같은 운동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파미르 트레킹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트레킹 완전 초보인 나를 가이드할 적절한 여행사를 찾았다. 오지 체험 전문 여행사(티엔씨)가 보내온 안내서에는 3천∼4천m 고도를 넘나들며 현지 음식과 홈스테이 같은 생소하고도 도전할 만한 내용을 소개했다.

지난 4월 퇴직한 뒤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은 이랬다. 나이를 알려 주면서 "제가 파미르 트레킹이 가능할까요? 혹여 동행자들한테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요?" 답변은 간단했다. "여성들도 다수 있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차도 동행하니 별 문제는 없다"는 얘기였다.

일단 안도했지만 긴장과 염려는 여전했다. 망설이지 말자고 다짐하며 결단을 내렸다. 여기에는 처남(치과의사) 권유도 한몫했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5년에 한 번씩 스스로에게 한 달 정도 휴가를 주는데, 그 귀한 시간을 오지 트레킹에 바치는 모습을 보고 함께 평생 기억할 만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로서는 30여 년이 훌쩍 지난 옛 사건을 되새기는 인생 회고의 시간을 뜻하기도 했다. 1989년 나는 국민일보 기자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처음 취재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당시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개방·개혁 정책에 따라 동구 공산권이 붕괴했고, 소련 꼭두각시였던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 정권도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소련군 철수 결정과 반군 ‘무자히딘’ 반격은 아프간에 새로운 혼란을 예고하면서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당시 30대 팔팔한 청년 기자였던 나는 파키스탄 북부도시 페샤와르에 진을 치고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위험에 내던졌다.

파미르고원은 판즈 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길게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강 건너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프간 산하와 주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여전히 금단의 땅 아프간을 보며 흘러 버린 세월 속에 청년에서 노인으로 변한 나에게 파미르는 무슨 깨우침을 줄 텐가. 

또 하나, 실크로드 길목 파미르를 생각하면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권력의 법칙」이란 책을 보면 실크로드를 따라 파미르고원 부근에서 벌어진 사건을 예시한 대목이 나온다.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한 뒤 당시 중앙아시아 저편에서 제국을 형성한 호렘샤 왕국 무하마드 왕에게 ‘실크로드 공동 운영권’ 논의를 위해 사절단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몽골 사절단은 무하마드 왕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지역사령관이던 이날 치크에게 모두 잡혀 처참하게 처형당했다. 

김창룡 교수 일행.
김창룡 교수 일행.

이에 칭기즈칸은 분노했지만 이날 치크 사령관 독단 행위로 보고 이번에는 무하마드 왕에게 직접 사절단을 보내고 이날 치크 징계도 동시에 요구했다. 무하마드 왕은 이름도 생소한, 먼 아시아 칭기즈칸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면서 사절단에게 모욕을 주고 진상품을 압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칭기즈칸은 "당신들은 전쟁을 선택했다"며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살육과 파괴에 나섰다. 부하들에게 지역사령관 이날 치크는 죽이지 말고 사로잡으라고 명령했다.

생포당한 이날 치크는 몽골인들이 보는 앞에서 펄펄 끓는 수은에 담겨 비명 속에 죽어갔다. 실크로드 어디엔가 있을 이날 치크 비명소리. 결국 도망다니다 끝내 객사한 무하마드 왕. 그들은 "칭기즈칸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다가 왕국을 잃고 가족의 생사마저 모른 채…"라며 통한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사건에서 「권력의 법칙」은 "상대가 누군지 모를 때는 칭기즈칸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겸손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나는 파미르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허공에 사라진 이날 치크 비극을 떠올렸다.

오늘날 우리 삶에도 소중한 ‘겸손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새기기로 했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더욱 겸허한 자세를 몸에 새기리라 마음먹으며 파미르 하이웨이 첫 출발지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로 향했다.

김창룡 교수
김창룡 교수

파미르 트레킹 구성원은 티엔씨 대표 채경석 대장과 세 커플, 여성 4명, 처남과 나를 포함한 남성 7명을 합쳐 모두 18명이었다. 대부분 50∼60대였지만 놀랍게도 70대 슈퍼맨 3명도 동행했다. 최연소 53세부터 최연장자 75세까지, 이들과 함께하는 파미르 하이웨이 트레킹을 시작한다.

나 같은 초보자가 과연 고난도 파미르 하이웨이 트레킹을 무사히 완주할까? 이런 트레킹을 찾아 달려오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파미르고원은 인생 은퇴를 경험하는 시니어들에게 어떤 성찰과 가르침을 줄까? 파미르 트레킹 전과 후 우리는 무엇이 달라질까?

7월 27일부터 8월 11일까지 16박 17일간의 대장정. 원정대원 18명과 함께한 비포장 파미르 트레킹 이야기 속으로 달려 보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