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열심히 준비해서 입사한 회사에서 인도로 3년간 파견시킨다면 갈 테냐?" 학생 대부분은 가지 않겠다고 답한다. 만약 가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한 학생도 있었다.

인구 세계 1위, 경제 규모 세계 5위, 최근 3년간 평균 6%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인도는 중국에 버금가는 중요한 경제협력 대상국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도 인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진다. 그러나 국내에서 인도 전반에 관해 배울 수 있는 학과는 사실상 한국외대와 부산외대 두 곳에만 있다. 전국 대학에 중국과 관련한 학과가 대부분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인도에서는 영어로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굳이 힌디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대부분의 생각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인도에서 다년간 살면서 영어와 힌디어를 잘 구사하고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는 파트너와 단지 인도 출장만 다니면서 영어만 잘하는 파트너 중 누가 더 인도에서 성공할까? 그리고 누가 더 실패할 확률이 낮을까? 인도는 영국 식민지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힌디어에 부분적으로 영어가 사용된다. 이것이 현대 힌디어다. 국내에 현대 힌디어를 구사하는 자는 몇 명이나 될까?

필자는 우즈베크어, 러시아어, 영어를 구사한다.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에 속했던 공화국이었기 때문에 우즈베크어에 부분적으로 러시아어가 사용된다. 이것이 현대 우즈베크어다. 국내에서 현대 우즈베크어를 구사하는 자는 필자 한 명이다.

매년 2학기에 필자는 중앙아시아 정치와 외교라는 과목을 강의한다. 종강이 다가오면 매년 1명의 학생이 이 지역을 전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필자는 제발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래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미국에 가서 공부하라고 한다. 왜 우즈베키스탄이 아니고 미국에 가야 하느냐고 질문하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 전공을 살릴 가능성이 높고, 만약 그렇게 못 된다 하더라도 최소한 영어학원에서 강의라도 할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 너는 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

필자는 우리나라 학계의 생태계를 반영해 현실적이고 직설적으로 학생들의 자문에 응했다. 학생의 미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을 잘 알기 때문에 무책임한 스승이 될 수는 없었다.

필자는 몇 주 전 모 정부 부처의 자문회의에 참석했다. 이 부처는 아시아의 전략적 협력 국가들을 전공한 지역전문가들을 초청해 이들에게서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에 관한 현황과 정책적 조언을 받고자 했다. 참석한 지역전문가들은 필자처럼 해당 국가에서 학위를 받았거나 현지에서 장기간 체류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만찬 자리에서 필자는 담당 공무원에게 다음과 같은 우리나라 현실을 설명해 줬다. "10년이 지나면 오늘 참석한 지역전문가들을 대체할 후속 세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아시아의 전략적 협력 국가들은 모두 개발도상국이고, 한국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국가의 지역전문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따라서 현재 아시아의 전략적 협력 국가를 깊이 있게 전공하는 학문 후속 세대는 사실상 없다. 이들 국가의 언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능통한 지역전문가를 지속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계약학과처럼 지역전문가 계약학과가 필요하다. 만약 특정 국가의 지역전문가로 인정받는 과정을 이수하고 난 후 정부 부처 혹은 주요 기업체에서 일할 계약학과가 만들어진다면 학생들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성장하고 인정받으려면 아시아의 전략적 협력 국가들과 관계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지역전문가는 필수 요소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전략광물들은 이러한 국가들에 매장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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