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고원 란가르 지역의 미샤 홈스테이.
파미르 고원 란가르 지역의 미샤 홈스테이.

7월 27일 우리나라 한여름 무더위를 뒤로하고 에스타냐 항공으로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를 경유해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 도착했다. 비행에 걸린 시간은 6시간 30분 정도였다.

두샨베 역시 바깥 온도는 36℃로 햇살이 따가웠다. 먼지도 많아 아직은 파미르를 실감하지 못했다. 두샨베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 날 두샨베 남쪽에 자리한 레일라쿨(3천400m) 호수로 첫 트레킹 일정을 잡았다.

"처음부터 3천m대 높은 지대에 올라가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3천m를 넘는 고지대를 올라 본 적이 없는데…."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 밖에 온갖 마음이 교차했다. 일행은 3명씩 조를 짜서 도요타 4륜 구동 ‘산악 전문 차’에 올랐다. 모두 7대가 한 팀을 이뤘고, 우리(처남과 나)는 순서상 맨 뒤 7번 차를 배정받았다.

맨 뒤에서 달리는 차가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에는 몰랐으나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바로 깨달았다. 곳곳이 패인 도로의 먼지와 매연은 고스란히 뒤차, 그 중에서도 맨 꼴찌 차 몫이었다.

두샨베 시내의 더웠던 날씨가 고도 2천m를 넘으면서 서늘한 바람으로 변했다. 여기서부터 비포장 도로가 본격 시작했다.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기며 오랜만에 자유의 상징, 오프로드를 실감했다.

2천800m 지점에서 차는 멈췄고, 채경석 대장은 등산복과 스틱을 준비하라고 했다. 여기서부터는 9㎞ 왕복 트레킹에 나서는 일정이다. 등산화를 조여 신으며 방수복을 준비하는 사이에 벌써 높은 산 날씨는 변덕을 부리며 비를 뿌렸다. 일행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볍게 방수복과 우산을 들었다. 나도 딸이 선물한 등산복과 처남이 선사한 고급 스틱을 준비하고 처음으로 고산 트레킹에 나섰다.

파미르를 달리는 김창룡 교수 일행의 산악 전문 차량들.
파미르를 달리는 김창룡 교수 일행의 산악 전문 차량들.

고도 3천m를 넘자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처남은 천천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올라가자고 했다. 물을 많이 마셔 주는 편이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내 앞에는 70대 중반의 장신, 전직 박모 교장선생님이 늠름하게 걸어가는 중이었다. 박 교장은 그동안 국내외 산에 50여 년을 오르내린 등산 애호가였다. 그는 "자기 페이스가 중요하다"며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내려갈 때도 뛰지 말라"고 조언했다.

선두에는 채 대장과 함께 전직 공무원 출신 권모 씨가 작지만 단단한 체구로 우리를 이끌었다. 역시 70대 권 선생은 반바지 너머로 단단한 종아리를 내보이며 "이 정도가 힘드냐"고 웃음을 지었다. 권 선생은 60대 후배들에게 여러 가지 방면에서 큰 가르침을 주는데 차근차근 그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한다.

파미르 하이웨이 트레킹 전초전으로 감행한 3천400m 등정은 짜릿한 첫 경험을 선사했다. 50∼60대 여성을 포함해 단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모두 레일라쿨 호수 주변에 모였다. 바쁜 일상을 빠져나온 해방감과 첫 성취감에 젖어 모두 즐겁게 단체사진도 찍었다.

내 생애 첫 경험, 3천400m 고지 레일라쿨 호수에서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누가 뭐래도 장하다. 더 늦기 전에 이런 높은 곳에 오르다니 체력 관리는 보상받은 셈이다. 70대에도 올라오는 슈퍼맨들이 있지만 그들은 예외다. 60대가 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이런 여행은 계속해야 한다. 두 발이 나의 꿈을 이루게 해 주니 새삼스레 내 다리가 사랑스러워진다. 다리야! 고맙다…."

레일라쿨 호수 전경.
레일라쿨 호수 전경.

산을 내려오면서 내일부터 시작하는 파미르 하이웨이에 대해 살폈다. 파미르 하이웨이는 파미르 중앙과 쿤룬(崑崙)산맥이 만나는 동부회랑과 파미르와 카라코람, 힌두쿠시가 만나는 남부회랑을 연결해 달린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시작해 키르기스스탄 오쉬까지 1천250㎞로 이어지는 길을 파미르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우리 전체 일정은 ‘두샨베∼칼라이 쿰부∼호루크∼이스카쉼∼란가르∼켕시베르∼무르캅∼카라쿨∼바르탕 계곡’을 비롯해 파미르 하이웨이와 그 중심을 벗어나 파미르 속살을 관통한다고 안내서에 나왔다.

더구나 파미르 동부 고원지대에서 험난한 중간지대 바르탕 계곡을 일주하면서 파미르 중부 구석구석을 훑어 보고 현지 체험을 가능한 한 많이 하도록 구성했다고 한다.

파미르 어원은 페르시아어 ‘태양의 자리(Pa-imihr)’라고 한다. 파미르 지방은 대부분 타지키스탄 동부 고르노바다흐산주(州)에 속하고, 산계는 중국 영토인 동·중·서 파미르 3개 그룹이다.

파미르를 중심으로 북쪽에 구소련과 중국 경계를 가르는 톈산(千山)산맥이 있고, 동쪽으로는 쿤룬산맥, 서쪽으로는 힌두쿠시산맥이 아프가니스탄과 경계를 만들면서 뻗었다. 남동쪽으로는 파키스탄 카라코람산맥이 자리한다. 그래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난생처음 파미르 고산 트레킹을 마친 흥분과 성취감은 60대 시들어 가는 나에게 새로운 힘과 기운을 선사하는 듯했다. 많은 먼지를 뒤집어쓴 하루를 깨끗이 씻고 죽은 듯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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