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정부가 도입하려는 재정준칙 한도(3.0%)를 넘어설 전망이다.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44조8천억 원으로 올해 예산(13조1천억 원)보다 31조7천억 원 늘었다. 한마디로 세금으로 거둬들일 돈보다 정부가 쓰려는 돈이 45조 원가량 많다는 뜻이다. 정부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태도다. 지출 증가율을 2.8%로 묶었지만 세수 감소(2.2%)가 커서 재정수지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덕분에 국가채무도 GDP의 51%인 1천200조 원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균형재정 달성과 이를 위한 재정준칙 도입은 윤석열 정권의 대표 공약이다. 그 약속을 시행하기도 전에 스스로 내건 원칙을 어기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재정수지 균형을 하려면 지출을 14% 줄여야 하는데, 그것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선택지"라며 "써야 할 곳에는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심 끝에 역대 최저 수준의 증가율(2.8%)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했다. 그런 관성을 멈출 각오 없이 공약을 내걸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혹여라도 총선을 염두에 둔 거라면 정말 문제다.

정부는 지출 키워드로 약자 복지, 미래 준비, 일자리, 국가 본질 기능 수행을 꼽았다. 물론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회 약자를 위한 복지는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임시직 일자리를 더 늘리고 수당도 올리겠다는 건 언뜻 이해가 안 간다. 사병 월급을 사회 진출 지원금을 포함해 월 130만 원에서 165만 원으로 인상하고, 대중교통 요금 할인을 제공하는 K-패스를 도입한다는 것도 그러하다. ‘선거 결집도가 높은 고령층, 판세에 키맨을 할 청년층’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담긴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논란이 커지자 기획재정부는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3% 초과가 내년에는 불가피하나 2025년 이후부터는 재정준칙을 준수하고 점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사실 현 정부의 지출 수준은 문재인 정권 5년간의 지출 평균 증가율(8.9%)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신들이 내건 원칙을 어겼다는 점이다. 원칙은 지키기 힘들고 비용과 수고도 많이 든다. 그럼에도 원칙을 지키는 이유는 하나다. 예상치 못한 위기와 감당치 못할 환란에 대비하는 유일한 보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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