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역사는 해석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역사가 곧 진실만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역사 해석이 당파성과 다양한 관점에 따라, 각자의 사관(史觀)에 의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예를 프랑스 사회의 잔 다르크(1412∼1431)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 분쟁으로 시작된 백년전쟁 당시 16세 소녀 잔 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아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1431년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판정돼 화형을 당했다. 이후 그녀의 복권운동이 있었으나 계몽주의 시대에는 초자연적인 일이나 기적을 거부했기 때문에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됐고,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반동적 인물’로 평가돼 더욱 천대 받았다. 결국 그녀를 기리던 기념물이 파괴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황제는 영국과 맞서기 위해 프랑스 국민을 단합시키고 프랑스의 힘을 상징할 인물이 필요하자 그녀를 다시 영웅 반열에 복귀시켰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19세기에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민중이라는 생각으로 진보 지식인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신의 딸’이 아니라 ‘민중의 딸’로 다시 소환돼 민중의 독립과 자유를 대변하는 존재가 됐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집권세력이 바뀌면 그들의 필요로 역사 인물을 재평가하거나 새로운 영웅을 등장시켜 자기합리화와 대외정책 도구로 사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나라에서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기치를 내세운 때가 있었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우리의 지난 역사가 잘못됐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격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나라의 건국역사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최근의 정율성 공원 조성과 홍범도 흉상 문제도 그러하다. 왜일까? 정권 필요에 따라 친중이나 반일의 아이콘이 요구됐고, 이러한 행위에는 이념과 당파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역사를 단순히 정파(政派)와 사가(史家)의 해석 문제로 귀결시켜 진실 문제를 궁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러나 다행히 역사에는 다소 늦을지라도 청구서가 따른다는 게 우리에게 희망이다. 이제 늦게나마 도착한 그 계산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동양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퇴폐적인 성문화 주범으로 서구를 꼽지만, 사실은 실크로드 교역 시대 비단과 함께 동양 사회에서 수출된 축첩, 일부다처제, 그룹섹스 그리고 중국과 인도,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환상적이고 자극적인 방중술이 로마를 비롯한 서구인들을 타락시켰다고 한다. 수세기 후 그 계산서가 다시 동양으로 청구됐다는 게 서구의 주장이다. 그 다음은 아편전쟁의 부메랑이다. 영국이 중국에서 비단을 사기 위해 팔았던 아편이 오늘날 서구사회를 황폐케 하는 독소가 됐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역사에는 간지(奸智)가 있다고 한다. 헤겔의 ‘이성의 간지’를 일컫는 말로, ‘인간 행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인 역효과를 의미한다. 그 예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들 수 있다. 3일간의 특수작전이라고 표명한 전쟁이 예상 밖으로 진전돼 자신과 러시아 운명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는 시진핑의 일인독재(一人獨裁) 영구 집권이 오히려 중국에 경제위기를 초래한 위험 요인이 됐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경제성장보다 공산당의 국가지배력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통제가 쉬운 국유기업 육성을 강화하는 반면, 경제성장의 추동 세력인 민간기업을 규제함으로써 성장 동력을 스스로 막아 경제위기를 자초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그의 집권 초기 패권 확대를 위해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해당 국가들의 파산과 부패로 지리멸렬한 상태이고, 유럽 4개 참여국 중 이탈리아는 이 사업에서 탈퇴를 고려 중이다. 더욱이 인도에서 개최한 G-20 회의에서 일대일로에 대항하는 ‘인도·중동·유럽을 잇는 경제회랑’(IMEC)에 대한 양해각서를 미국 주도로 주요 국가들이 체결함으로써 대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중국에는 또 하나의 악재가 돌아왔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 결과는 서구의 탈중국화(decoupling)와 중국으로부터의 위험 제거(de-risking)에 직면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면 역사는 항상 승자 독식으로 왜곡되고 당파에 의해 해석돼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인 역사의 청구서와 간지(奸智)는 과연 우연의 산물일까? 만일 필연의 결과라면 그 숨은 곳에 ‘우주적 질서’가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인간의 종국적(終局的) 역사 운행은 선(善)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역사는 늦을지라도 계산서를 청구한다는 믿음으로 긴 안목에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끈질긴 이념전쟁도 그 원천이 쇠퇴하면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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