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휴브리스(Hubris)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오만, 교만, 자기과시라는 뜻이다. 종교적으로는 인간이 주제넘게 신에게 대들거나 신의 영역을 넘보는 짓을 말한다.

현재 누리는 혜택을 오직 자신의 탁월함으로 쟁취했다고 착각하는 마음은 오만하고 교만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탁월함(Arete)에서 출발해 교만(Huris), 거친 행동(Ate), 징벌(Nemesis)에 이르게 돼 신 네메시스에게 파멸되는 과정을 네메시스사이클이라 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탁월함 때문에 교만에 이르게 되고, 교만은 거친 행동을 낳고,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비난으로 이어져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뜻이다. 휴브리스라는 병에 걸리면 현실을 정확히 보는 감각을 상실하고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도 감지하지 못한다.

20세기 대표 역사학자로 꼽히는 영국의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역사 변화를 설명하면서 휴브리스의 뜻을 재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바뀌지만 일단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는 과거에 일을 성사시킨 자기 능력이나 방법을 지나치게 믿어 우상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했다. 곧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과신해 자기 능력 또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교만해져 올바른 균형감과 판단력을 잃어버린 채 결국 몰락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현상을 휴브리스라고 규정했다.

휴브리스는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탁월한 능력만을 믿고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또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바뀌었든 상관없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일을 밀어붙이다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언제나 강조했던 토인비는 81세 생일을 맞아 "세계의 다양한 문명과 역사를 연구하며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영광에 붙들려 있는 것은 문명도, 사람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과거에 안주할 때 미래를 바라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매여 있는 사람은 이미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품고 미래를 향해 떠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늙지 않는 청년입니다"라고 말했다.

휴브리스는 초심을 잃었을 때 반드시 따라오는 극도의 자만심이자 과도한 자기 확신의 마음 상태다. 이 현상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고, 국가·사회·집단·개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성공 요인보다는 실패 요인에 더 집착하지만,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할 때는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다. 성공으로 교만해지고, 약자들에게 복종만을 요구하며,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균형감과 판단력을 상실하면 휴브리스의 덫에 걸린다.

요즘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과거 지향적이고, 곳곳에서 내 탓·네 탓 공방과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휴브리스 현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서 찾고, 대립과 갈등 그리고 분열을 조장하며, 무슨 일이 잘못될 때마다 남 탓을 하면 변화와 성장 기회를 얻기 어렵다. 위기에 처할수록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찾아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사람의 성품 중에서 가장 뿌리 깊은 것은 교만"이라고 했다. 누구나 성공하면 교만에 빠지기 쉽다. 잘나갈 때일수록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겸손이 사라진 마음엔 교만이 자리잡게 마련이다. 보이지 않는 교만은 그 길이와 무게, 넓이와 깊이가 얼마만큼인지 알 수 없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휴브리스는 인간에게 비극을 가져다주는 지름길이다. 그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자기반성과 성찰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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