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功行賞(논공행상)/論논의 할 논/功공 공/行다닐 행/賞상줄 상

공의 있고 없음, 크고 작음을 따져서 거기에 알맞은 상을 준다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에 나온다. 삼국시대 위(魏)날 조비(曺丕)는 죽기 며칠 전 조예(曺叡)를 황태자로 정하고, 그 집안의 맹장인 조진(曺眞)과 조휴(曺休), 유교와 법에 정통한 진군(陳群)과 원론인 사마의(司馬懿) 네 사람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조비 사후 3개월 뒤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강하군(江夏郡)을 공격했다. 태수 문빙(文聘)이 공격을 막았다. 손권은 후퇴했다. 오나라 제갈근(諸葛謹)과 장패(將覇) 등이 양양(襄陽)으로 침략했지만 무군대장(撫軍大將) 사마의가 이것을 격파해 장패를 목 베고, 정동대장(征東大將) 조휴도 오나라의 별장(別將)을 심양(尋陽)에서 격파했다. 전쟁이 끝난 후 위나라 조정은 각자의 공적에 차이를 둬 상을 내렸다(論功行賞各有差).  <鹿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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