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지난 9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8월 23일 계류 결정에 이어 재차 계류시켰다. 일부 야당 의원(김의겸·이탄희·박주민 의원)들이 중앙회장 연임 관련 개정 내용(단임제→연임 1회 허용)의 현임자 적용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위원장(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양당 간사 협의에 따라 법안을 상정했지만 몇 분 의원께서 반대 의사를 표시하시니 위원장으로선 법안심사의 그간 관행(만장일치)을 어길 수 없다"며 계류를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국회법 규정에 비춰 볼 때 문제가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첫째, 국회법 제86조 제5항의 규정을 위반했다. 국회법 제37조 제1항 제2호 아목은 ‘법안의 체계·형식·자구 심사’를 소관사항으로 정하고, 제86조 제1항은 "위원회에서 법률안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을 하였을 때에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편, 동법 제86조 제5항은 "법제사법위원회는 제1항에 따라 회부된 법률안에 대하여 체계와 자구의 심사 범위를 벗어나 심사하여서는 아니된다"라는 규정까지 뒀다. 이 규정은 2021년 국회법 개정 시 신설된 규정이다(법률 제18453호, 2021. 9. 14. 일부개정). 당시 이 법이 개정된 이유를 보면 "…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는 심사로 인해 법안심사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음. 이에 …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의 범위를 벗어나 심사할 수 없음을 명시함으로써 합리적인 의사진행을 통한 효율적 국회운영을 보장하려는 것임"이라고 제시했다. 

생각건대, ‘중앙회장 연임 관련 개정 내용(단임제→연임 1회 허용)의 현임자 적용의 가부’에 관한 사항은 소관 상임위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이미 ‘적용하기로’ 결론 낸 사안으로서 이는 내용(입법정책)에 관한 사항이지 ‘체계·자구 심사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자세한 내용은 9월 4일자 "‘농협법 개정안’, 국회 법사위 통과의 당위성" 본보 기고문 참조). 만일 소관 상임위(농해수위)를 통과한 농협법 개정안의 내용이 도저히 맘에 안 들면 본회의에서 부결 처리하면 될 일이지 체계·자구 심사를 소관하는 법사위가 ‘월권적으로’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법사위가 법안 내용을 문제 삼아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될 기회마저 불법적으로 차단해서는 안 되며, 만일 이를 용인한다면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게 돼 사실상 ‘상원’처럼 기능하게 되는 부작용과 폐해를 초래하게 된다.

둘째, 국회법 제54조 규정을 위반했다. 국회법 제54조는 ‘위원회의 의사정족수·의결정족수’를 정하는데, "위원회는 재적위원 5분의 1 이상의 출석으로 개회하고,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한다. 법사위에서 법안 심사를 하다 보면 의원들 간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도 있다. 찬반 의견이 대립하면 보편적 민주주의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해결하는 게 합리적이며, ‘만장일치’를 이루기 위해 마냥 계류시키면 안 된다. 

따라서 법사위원장은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제시된 경우 이를 표결을 통해 통과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출처도 불분명하고 타당성도 의심되는 ‘법안심사의 그간 관행(만장일치)’을 이유로 법안을 계류시킨 행위는 그 타당성을 납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국회 법사위의 농협법 개정안에 대한 계류 결정은 국회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국민들에게 "국회가 자신들이 만든 법조차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면 이러한 불법적 국회 운영을 방치해야만 하는가. 정부(농식품부)가 나서서 국회법 제86조 제3항에 의거 ‘소관 위원회(농해수위) 위원장이 간사와 협의하여 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서면으로 요구하는 방안’을 건의·추진할 필요가 있다. 법 개정 지연으로 발생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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