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그들에겐 꿈이 있다.
꿈이 있었다.
머 언 옛날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쟁여 두고
강철 칼처럼 담금질하면서 은밀하게 벼려온 꿈이 있었다.
작은 꿈,
남들 다 꾸는 꿈 꾸거나, 개꿈 꾸는 이들과는 다른 삶 있었다.
 
새벽녘이면 샛별의 떨림을 눈길로 어루만지며,
산거미 태우며
발갛게 달아오른 바위에다
단전에서 영근 숨 뱉어 새벽안개를 뿜어낸다.
여명을 쏘시개 삼아
활활 타오른 태양을 혓바닥에 놓고 굴려가며
꿈과 섞어 천천히 목젖으로 넘긴다.
어머니 할머니 또 그 할머니가
먼 옛날부터
알몸뚱이의 지문들을 남기며 가꾼 터에
아버지 할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가
靑 빛 天平線,
물빛 하늘에
새하얀 눈물을 쏟아내며
간직해 온 기억들 되새김질한다.
 
언제부터인가
어디서부터인가
떠오르는 해 찾아
집요하게 쉬임없이 이동한 사람들
하늘을 신령하게 여겨
해, 달, 별들 섬기고
푸른빛 하늘과 초록빛 땅을 이어주는 삼족오
귀히 여기는 사람들.
하늘이 점지한 터
기어코 찾아내
조선이란 신시를 세운 사람들.
하늘의 피를 받았다고 새긴 그들
 
누구라도 굴복하길 거부했고,
늘 자유롭게 살길 바랐다.
너르디너른 요동벌
막막하게 펼쳐진 초평선에 말굽자국들 남기고,
淸물 넘실거리는 수평선 너머로
돛그림자 펄럭거렸다.
 
역사에도 운명은 있고,
하늘의 뜻도 변전은 있는 법.
조선은 사라지고.
게으른 대가, 무지한 대가를 핏물로 치르며
그 터에 살던 사람들이 시작한 유랑.
터의 유랑, 마음의 유랑, 역사의 유랑이 되풀이됐다.
자유를 앗긴 채 주린 배 움켜쥐고
지는 해처럼, 뜨는 달처럼
기약없는 유랑이 지속됐다.
들판의 우등불 곁에 쪼그린 채
겨울밤 할켜대는 이리 울음 들으면서도
꿈꿨다.
먼 옛날의 기억들
은밀하게 토해 내며 새김질해댔다.
 
무르익던 꿈들
제 풀에 터진 어느 날
해모수가 황금마차 타고 내려와
백두산 천지의 물신인 유화 몸 섞어
햇덩이 낳았다는 이야기가
꿈결처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그리고
해를 까고 태어난 한 사내아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매운 꿈 꾸던 아해는
시대에게 ‘추모’라 이름 받고.
자란 사내는
남으로 남으로 부여마 달려
할아버지인 단군처럼, 아버지인 해모수처럼
또 하나의 ‘신시’ 찾았다.
 
천지신명께 告하였다.
고구려를 세웠노라고.
비류국을 정복하고 ‘다물도(多勿都)’라고 선언했다.
그가 아비로부터 물려받은 꿈의 이름,
그들이 오랫동안 되새김질했던 배냇짓
바로 다물이었다.
 
그 꿈은
또 수백 년 흘러 광개토태왕으로
 
세월이 흘러
또 다른 ‘다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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