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천지하철 1호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계양역은 인천지하철 1호선 첫 정거장이어서 그런지 타려는 시민들이 많지 않았다.

텅 빈 좌석은 어느새 몇 정거장을 지나치자 빈자리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지만, 역마다 승차한 시민들은 핑크색으로 색칠한 임산부석은 비워 둔 채 서서 갔다.

지하철이 부평구청역에 정차하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임산부 자리가 빈 모습을 보고는 바로 앉았다. 임산부석 주변에서 서서 가던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이 모두 그에게 꽂혔지만 휴대전화 검색 삼매경에 빠진 터라 주변에서 쏘는 눈총은 의식하지 못했다.

지하철이 부평역에 도착하자 그는 내렸고, 임산부석은 누구도 앉지 않은 채 텅 빈 상태를 유지했다.

이런 ‘경우 없는 경우’야 예외겠지만 지하철이나 버스에 설치한 임산부석에는 아무나 앉으면 안 된다.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임신부가 힘들어서라기보다는 태아 위험성 때문이다. 임신부가 오래 시간 서서 지내면 척추와 골반에 무리를 줘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정부는 저출산 사회에서 태아 죽음은 국가 인력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고 임산부 배려석을 따로 만들었다. 하지만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 두는 데 대해 상반된 의견이 충돌하면서 외려 갈등이 불거진다.

크게는 "임산부 배려석은 말 그대로 ‘배려석’이기에 누구나 앉았다가 양보하는 좌석"이라는 주장과 "취지에 맞게 임산부가 마음 편하게 앉도록 비워 둬야 한다"는 의견이 부딪힌다.

물론 비임산부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더라도, 특정인과 말다툼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편한 상황을 원치 않는 데다 혹시 모를 피해 때문에 임산부가 먼저 비켜 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부산시는 누구나 임산부 배려석에 앉도록 하는 대신 임산부가 근처에 오면 앉은 사람이 보도록 손잡이 부분에 ‘핑크라이트’가 켜지는 장치를 도입했다. 인천시도 부산시를 벤치마킹해 이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품은 교통약자 임산부에게 자리를 내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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