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몇 년 전 스페인을 여행하며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공들여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건축예술은 문외한이지만 가우디의 생애와 지금까지 100년 넘게 공사가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일이다. 다만, 그곳을 감상하며 "주변과 과연 어떤 조화를 이뤄 낼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주변은 그저 여느 관광도시 같은 현대식 건물과 도로, 차량, 골목, 인파로 에워쌌다. 지리적·역사적·종교적 연계 요소들로 하여금 특별하게 조화와 균형을 가지고 존재 가치를 확보하리라 여겨지면서도 비전문가로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거 맡겨진 시간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 그런 듯하다. 

얼마 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치퍼필드’ 방한 소식을 접했다. 그는 "건축은 화려하고 과장된 형태보다는 절제된 디자인으로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가로서의 철학과 역할, 책임을 이야기한 것으로 적극 공감한다.

조금 더 그의 말을 살펴보자면 튀는 건축보다 시대와 사회에 녹아드는 건축, 그런 건축은 그림이나 조각 같은 독립된 예술이 아닌 도시 환경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했다는 점이다. 더하여 건축에 대한 환경문제까지 언급한 것이다. ‘상품의 질’보다는 ‘과정의 질’을 살펴 윤리와 환경보호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과정’에 ‘내용’이 보태지면 그 자체가 가치다. ‘치퍼필드’ 작품 용산 소재 ‘아모레퍼시픽’본사 건물을 한 번 보러 갈 생각이다.

오래전 필자 고교 시절에는 주번(週番) 제도가 있어 번호에 따라 순번제로 교실 내 책상 정리, 칠판 청소, 음수대 물 채워 두기, 겨울엔 난로용 조개탄 확보하기 등 소소한 임무를 일정 기간 수행해야 했다. 대충 고교 3년 내내 12회 정도(1회 1주일) 주번을 맡았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동급생보다 두 살이 어린 나이였음에도 내가 맡은 한 주는 정말 최선을 다해 그 임무를 한 기억이 있다. 새벽같이 집을 나와 학교에 오면 교실 구석구석 물걸레 청소를 하고, 물과 조개탄을 차질 없이 가져와 하루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했다.

아마 내 기억으로 단 한 번도 주번 일에 담임과 급우들의 불만을 듣지 않았다. 누구에게 보여 주기도 아니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학 입학원서 작성 부모님 면담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건넨 한마디가 지금껏 마음속에 자리한다. "어머니! 학과는 상관없고요, 얘는 주번할 때 그런 태도나 마음가짐이면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도 잘 해낼 겁니다." 내 성적과 원하는 대학, 학과의 조정 문제가 생겼는데 선생님은 전혀 결이 다른 말씀과 결론을 내리셨다. 생활기록부 내용까지 확인시키셨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주어진 일, 맡은 일에 대한 수용 태도나 실천력, 역할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격려 차원에서 표현했다고 이젠 이해가 된다.  

ESG 경영에 대해 많은 이론과 실천 방안들이 회자된다. ESG 경영의 성과로 합리적 시스템과 법리로 평가받는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통합적 평가지수는 불완전한 요소가 너무 많다. ‘글로벌 공급망 관리’나 ‘중대재해법’ 같은 이른바 ‘맡겨진 영역’의 상황논리까지 중소기업이 짊어지고 간다면 역할과 책임에 대한 기본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ESG 경영 이전에 사회적 합의나 공감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합리적 평가가 ESG의 최고 가치라고 인정하지만 정부나 대기업이 가진, 즉 그들이 가진 것을 중소기업에 나누고 배려하는 사회적 정의, 기업가 정신의 책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정부와 대기업의 힘과 자본을 필자는 ‘맡겨진 영역:consigned area’라고 표현하며 중소기업 가이드 러너 노릇을 주문한다. 이는 시종일관 중소기업의 ‘자기주도적 합리적 자기평가’가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 어떤 보고서에도 정성평가는 반드시 필요한 항목이 된다는 전제다. 과연 ESG에 대해 특별한 규칙이나 책임감이 필요한지? 중소기업의 경우 과잉 진단 같은 문제의식이나 실태조사가 얼마만큼 제대로 된 성장·발전으로 이어질지 챙겨 봐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살려야 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있다. 자발적 역할 규정과 책임을 지는 경영이야말로 기업 가치를 올리고 제대로 된 ESG를 실천하는 전략이 된다.

ESG 경영에 있어 중소기업은 최소한 규제로 타게팅 돼야 하며, 그래야 주변 상황들과 조화롭고 질서정연한 존재 가치를 그나마 재차 확인받는다. ESG 경영은 주변과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는 CEO의 자기주도 경영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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