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대표변호사
이승기 대표변호사

2020년 양육비 이행법이 개정되면서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 공개·면허 정지·출국금지 등 간접강제 방안이 입법화됐다. 여기에 법원의 감치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1년 이상 양육비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1년 이하 징역에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형사처벌 규정까지 전격 도입했다.

양육비 미지급은 사실상 아동학대와 똑같다며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성난 여론에 국회가 적극 응답하며 이룬 쾌거였다. 양육비 문제를 개인 간 사적 채무로 보고, 이를 양육자 스스로 해결할 과제로 남겨 뒀던 그동안의 야만적인 법·제도를 생각하면 너무도 큰 문명(?)의 진화라는 평가는 유효하다. 

하지만 양육비 한 푼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이 진정 반성하는 마음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법의 처벌이 무서워서라도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할 것이라는 믿음은 큰 착각이었다.

8월 30일자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개정 양육비 이행법이 시행된 2021년 7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신상 공개·면허 정지·출국금지 같은 제재 조치를 받은 양육비 미지급자는 772명이나, 이 중 실제 양육비를 지급한 사람은 69명(전액 지급 30명, 일부 지급 39명)에 불과했다. 제재조치 후 이행률은 고작 9%로, 나머지 91%는 여전히 미지급 상태다.

여기에 여가부가 2022년 7~11월 전국 한부모가족 가구주 3천3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는 양육비를 받지 못한 경우가 80.7%로 3년 전(78.8%)보다 오히려 증가했다고 하니 이쯤되면 양육비 미지급자들을 과소평가했다는 자책감까지 든다.

왜일까? 문제는 바로 제재조치에 형사처벌까지 가는 과정이 순탄치 않고, 무엇보다 양육비 미지급자가 이런 사정을 잘 안다는 점이다.

현행 양육비 이행법은 명단 공개와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대상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은 후에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자’로 한정한다. 여기에 출국금지는 양육비 채무가 3천만 원 이상 미지급자로 제한하고, 명단 공개는 얼굴을 제외한 채 이뤄진다는 점에서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제재조치가 내려지기 위해선 무엇보다 ‘감치명령’이 필수라는 점이다. 하지만 양육비 미지급자가 작정하고 위장전입을 하거나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가 다를 경우, 심지어 해외 도피 행각을 벌일 때는 소장 불송달을 이유로 감치소송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이는 곧 제재조치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가장 강력한 한방인 형사고소조차 감치명령을 전제로 하다 보니 애당초 형사고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시송달을 통해 운 좋게 감치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실제 형사고소 과정에서는 ‘감치소송이 공시송달로 진행돼 피의자(미지급자)가 소송 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혐의 처분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감치소장’만 받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살지 않거나 아예 잠적해 버리는 식의 필승법(?)을 사용하며 현행 양육비 관련 법·제도를 무력화시킨다.

일찍이 진화론의 아버지인 찰스 다윈은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변화된 사회적 환경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지키도록 진화했고, 그 결과 여전히 양육비를 못 받는 부모와 자녀들은 고통 속에 산다. 적어도 양육비 세계에서는 나쁜 부모들이 승자가 된 셈이다.

그렇기에 감치소송 시 공시송달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무엇보다 감치명령 없이도 형사고소가 가능토록 하거나 적어도 공시송달에 따른 감치명령 시에도 형사처벌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밀린 양육비를 주거나 현실적인 변제안 제출을 조건으로 형사처벌을 유예토록 해 준다면 개정에 따른 부작용도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변화의 동물이라 하지만, 어떻게든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서인지 양육비 미지급자의 필승법은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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