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잠을 깬 남자가 전등불을 켜며 하루를 시작한다. 면도를 한 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옷·가방·열쇠를 챙겨 집을 나선다. 평범한 아침 같지만 영상 속 집은 기괴하다. 사람이 전등·거울걸이·식탁·옷걸이 따위를 대신한다. 집 밖 상황도 마찬가지다. 출근길에 탄 택시, 신호등, 문, 사물함 속 가방걸이 모두 사람이다. 많은 사람을 도구로 쓰면서 도착한 사무실 문 앞에서 넥타이를 매만진다. 남자는 어떤 일을 할까, 궁금함도 잠시 문 앞에 눕는다. 이내 다른 이가 남자 등을 밟고 신발을 털어낸 뒤 문 안으로 들어간다.

산티아고 보우 그라소 감독 단편 애니메이션 ‘El empleo’ 내용이다. 7분 조금 안 되는 영화는 현실을 극단으로 표현해 꼬집는다. 감독은 위계 구조가 존재하는 노동 세계에서 아이러니컬한 시각으로 삐뚤어진 경제 논리를 작품에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어 El empleo는 고용을 뜻한다. 도구로 고용한 사람은 표정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에 집중한다.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도 조금의 망설임이 없다.

영화 밖 현실도 비슷하다. 누군가를 고용해 그 노동을 이용하고 그 덕에 노동을 한다. 하나,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려는 부작용이 생긴다.

서울시는 정부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고 건의했다. 저출생 원인으로 꼽는 여성 경력단절을 해소하려고 육아와 일을 병행할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다. 오세훈 시장은 정책 효과를 보려면 월 100만 원 수준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물가 같은 이유로 생활이 어려워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가사도우미가 입주를 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항간엔 사업 실효성과 외국인 가사도우미 급여와 처우를 우려한다. 오 시장은 여러 부작용을 줄이고 사업이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고민하겠다고 했다. 부모가 기량을 마음껏 뽐내려면 아이를 돌볼 다른 이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 희생을 발판 삼도록 하는 세태에 적응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전등 노릇을 한 남자가 뒤집어 쓴 전등갓을 벗는다. 잠시 손에 든 전등갓을 바라보다 집어던지면서 영화는 비로소 끝난다. 생각과 감정이 없다기보단 현실을 받아들이고 무덤덤하게 해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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