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국토교통부는 지난 5일 전국 전세사기 피해 6천63건 중 1천540건이 인천에서 일어났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25.4%를 차지해 전국 지자체 중 1위다. 그 중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사건만 1천258건으로, 인천 10개 군·구의 81%에 달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미추홀구는 전세사기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주택 유형인 ‘다세대주택’이 가장 많은 구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추홀구 주민등록 가구 수는 10개 군·구 중 4번째로 많아 인천지역에서 인구 규모는 중위권 수준이지만 다세대주택은 인천 전체 가구 중 21%가 미추홀구에 몰려 가장 많다.

미추홀구가 이른바 ‘건축왕’ 놀이터로 전락한 데는 이 같은 주거환경도 영향을 미쳤을까. 같은 재앙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린 어찌해야 할까. 떠들썩했던 전세사기 태풍 이면에 숨은 인천 원도심 주거 실태와 주거정책 현주소를 짚었다.

허물어진 빈집 터를 방치한 미추홀구 전도관2구역.
허물어진 빈집 터를 방치한 미추홀구 전도관2구역.

 지난 18일 찾은 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 ‘나 홀로 아파트’. 다세대주택과 주거용 오피스텔을 합친 이곳 건물 외벽엔 ‘신축 분양’이란 글자를 크게 적은 펼침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필로티 구조인 1층 현관으로 들어서자 ‘구경하는 집’으로 가는 화살표가 눈에 띈다. 중개인은 기자에게 집을 소개하면서 "매물이 절반가량 남았다"고 했다. 이곳 공급 시작일은 2021년 12월께로, 3년이 지나도록 매물 절반이 미분양이란 얘기다.

불과 100여m 떨어진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 A씨는 "이런 집은 양심에 찔려 소개도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원주민들이 안 나가니 착공일이 밀린 데다, 자재비와 물가가 올라 결국 분양가가 지나치게 뛰었다"며 "그 돈 주고 들어갈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사회초년생이나 타지에서 온 젊은 부부, 외국인들이 계약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용현동 주상복합 나 홀로 아파트 또한 지난해 10월 분양을 시작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30%가량 매물이 남았다.

대규모 민간 임대아파트도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앓긴 마찬가지다. 서희스타힐스더도화는 지난해 7월 공급을 시작했으나 전체 물량 70%가 미계약에 그치면서 12월께 계약자들에게 1.5배 수준의 위약금을 물어준 뒤 분양계약을 철회했다.

동인천역 파크푸르지오 아파트는 지난해 9월 청약을 시작했지만 400여 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자 신규 계약을 할 때 6개월간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는 파격 조건을 내걸고 12월 임차인을 추가 모집했다.

그러나 이날 만난 주민 B씨는 "주말 아침이면 단지에 이사 차가 몇 대씩 오간다"며 "조건에 혹해서 입주했다가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몇 달 만에 도로 나간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미 지은 집도 분양이 안 되는 판에 숭의동에서는 지상 15층짜리 오피스텔을, 도화동에서는 지상 20층짜리 다세대주택 겸 오피스텔을 짓는가 하면 원도심 곳곳에서 신축 공사가 이어진다.

도원역 인근에 짓다 만 상태로 방치한 지상 25층짜리 생활형숙박시설은 2018년 3월 완공을 목표로 2015년께 착공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 9년째 자리를 지킨다. 을씨년스럽게 건물 뼈대만 선 공사장이 자리를 차지한 채 도시 미관을 해치는 데도 건축법상 공사 기간을 따로 제한할 근거가 없어 지자체도 손을 놓은 지 오래다.

한편, 아직 공사에 착수하지 못한 재개발구역은 사업이 계속 미뤄지면서 우범지대로 변하는 양상이다.

전도관2구역은 아직 거주민이 30%가량 남았는데도 ‘철거 예정’이라는 펼침막이 난무하고, 빈집을 부순 통에 폐허나 다를 바 없다. 금송구역과 송림1·2구역은 주민 대다수가 떠났는데도 1년가량 유령 도시로 방치해 현재는 길고양이와 들개가 터를 잡았다.

송림1·2구역에 남은 거의 마지막 주민 C씨는 "이곳에 혼자 살던 노인 대다수가 낡은 화수동이나 화평동 빌라촌으로 갔다"며 "보상가는 300만 원 수준인데 분양가는 1천만 원 선이니 분양받을 도리가 없다. 돈이 없으니 갈 곳 또한 없어 원도심만 전전한다"고 했다.

미추홀구에서 20여 년째 교직생활을 하는 박진호 인하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공성 결여’를 문제 원인으로 꼽는다.

저품질 주택을 과잉 공급하는데도 이를 규제할 법 근거를 마련하지 않은 데다, 지자체는 민간에 주거 개발과 공급을 맡긴 채 소극행정으로 일관하면서 사실상 주거정책에서 손을 뗐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개발만 추구하는 근대 이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현안을 타개할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소예 기자 yoon@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