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편하게 살고 싶었다. 예술하고 싶어서는 아니고, 공부 안 해도 되겠지 싶어 예대를 갔다. 듣기로 예술은 정한 답이 없단다. 진학하고서야 아차 싶었다. 저 말은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 삶에 대한 질문과 답까지 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식 쌓는 공부는 건너뛰고 냅다 사색부터 했다. 어쩐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졸업하는 데 남들보다 두 배 더 걸렸다. 고생 끝에 지성성까진 아니어도 지식인 흉내 좀 낼 즈음 누군가를 알게 됐다. 그도 학생이었는데, 듣기로 한참 방황하다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단다. 몇 번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사람이 참 기억에 남을 만치 똑똑했다. 단순히 지식이 많다거나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일찍부터 깨우쳤다고 하기엔 그 이상의 미묘한 헤아림을 지닌 듯 보였다. 그 헤아림은 앎에서 그치지 않고 지성으로 발전시킨 결과일 테다.

지식과 지성의 차이를 곱씹게 되는 요즈음이다. 둘은 무엇이 다를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면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해 배우거나 실천해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뜻한다. 지성은 ‘지각한 사실을 정리하고 통일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는 정신 작용’이다.

여기에 어느 서평지에서 읽은 흥미로운 글을 덧대고 싶다. "지성은 지식 보유 유무를 떠나 어떤 현상에 대해 고차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안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지식은 음식 재료이고 지성은 재료를 다듬어 요리하는 능력이라 하겠다."(서울리뷰오브북스 10호)

그저 많이 안다고 지성인이 되진 않는다. 쌀이 밥이 되기까지 끓이고 뜸을 들여야 하듯, 앎이 지성으로 자리잡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인 사유가 필요하다. 이 둘을 고루 갖추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 불균형이 심할수록 대화할 때 다른 사람에게 지식이나 아는 정보를 뽐내려고 애쓴다.

얼핏 보면 배려하는 마음 같지만 사실은 시혜이자 자기 만족이다. 그러면 대화는 양방향 소통이 아니라 상대 반응을 확인하는 일방통행이 된다. 상대가 감탄하든 당혹스러워하든 가진 지식을 건넸으니 그 반응을 보고 싶어한다.

배려심은 앎을 넘어 상대를 헤아릴 줄 아는 지성에서 나온다. 지성은 또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한 가지 능력으로 귀결하는데 다름 아닌 공감 능력이다. 고로 공감은 지성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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