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열린 예금보험공사 국정감사에서 유재훈 사장은 "(예금 보호 한도는) 2027년 이후 인상을 검토하는 게 적절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예견된 바다. 지난달 경제·금융 수장들이 모인 관련 부처 회의에서도 당분간 현행 수준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이유는 짐작 가능하다. 한도를 올리면 건전성보다 고금리를 쫓는 예금 유형 증가와 돈이 몰린 제2금융권의 위험 선호 행동까지 더해져 자칫 금융시장만 불안해진다. 예금보험공사에 지불해야 할 요율 인상으로 대출금리 부담도 높아진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올해 3월 실리콘밸리은행 대규모 인출 사태가 터졌을 때 미 정부는 중대한 금융위기로 규정하며 예금 전액에 대한 보호 조치를 취했다. 이후 파산회사를 인수한 회사에서 예금을 보장토록 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보호·금융 불안을 해소시켜 나갔다. 우리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올해 상반기 새마을금고 합병 당시, 피합병 고객들이 (계약에 따라) 한도와 상관없이 예금 전액을 보장받은 바 있다. 굳이 예금 보호 한도를 상향하지 않아도 소비자를 보호할 대안은 충분히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예금 보호 한도는 2001년 1인당 5천만 원으로 상향된 후 지금까지 쭉 그대로다. 23년간 화폐 가치와 경제 규모는 큰 폭으로 바뀌었는데, 예금 보호 한도만 동일하게 유지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현재 미국의 예금 보호 한도는 25만 달러(약 3억3천만 원)다. 영국은 8만8천 파운드(약 1억5천만 원), 일본은 1천만 엔(약 9천만 원)이다. 1인당 GDP 대비 보호 한도로 비교해도 미국은 3배, 영국과 일본은 2배 이상으로 1.17배(2022년 기준) 수준인 우리나라와 차이가 크다.

물론 예금 보호 한도를 올리면 예금보험료 인상으로 대출금리는 높아지고 예금금리가 낮아져 소비자 부담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금융 불안이 해소되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가 높아지는 긍정 효과도 기대된다. 더구나 우리처럼 고령화와 선진화를 동시에 겪는 사회에선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예금 비중이 높아 그 효과가 더욱 크다. 예금 보호 한도가 1억 원으로 상향되면 무엇보다 전체 예금자의 99.6%까지 보호를 받는다. 과연 이보다 중요한 복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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