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한세대학교 교수
박진호 한세대학교 교수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고 개인이 곧 브랜드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공존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기호일보 지면으로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의 단편입니다. 모르는 독자나 오랜 기간 소원했던 누군가가 글을 읽고 반갑게 연락해 올 때는 정말 설레고 기쁜 마음입니다. 개인의 좋은 역량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는 외톨이가 되지 않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좋은 소통으로 살아갈까요? 단절은 큰 아픔입니다. 좋은 소통의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우선, 의식적으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하기 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맹자」 ‘이루편(離婁編)’에는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禮人不答反基敬 愛人不親反基仁 治人不治反基智)"는 말이 나옵니다. 자기 중심 시각이 아니라 상대 시각에서 헤아려 보라는 뜻이며, 소통하는 삶의 지혜를 나타냅니다. 

우리 생각이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는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적이 분명히 있어서 일 것입니다.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맞지 않거나 나에게 불이익이 온다고 생각하면 갈등이 생길 것입니다. 그 갈등을 최소화하고 서로 간 목적을 긍정 결과로 이끌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서로의 처지에서 생각해 봅시다.

다음은 경청입니다. 경청의 청(聽)은 들을 ‘청’입니다. 이 한자를 분석해 보면 3가지 의미가 담겼습니다. 첫째, 왕의 귀로 들어라.(王+耳) 왕의 귀는 돌아가는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왕의 귀가 닫혔다면 세상의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리더는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열 개의 눈을 가지고 들어라. (十+目) 대화할 때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합니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와 상대방의 표정, 몸짓언어를 읽으면서 볼 때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귀로 듣기도 하지만 눈으로 듣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의 마음으로 들어라. (一+心) 집중하고 맞장구를 쳐 주면 상대방은 자신과 같다고 판단하며 마음의 경계를 풉니다. 누구와 대화하든지 한마음으로 초점을 맞출 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집니다.

이렇듯 한자어에서 묻어나는 ‘듣는다’는 것은 매우 체계적이고 심오한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우리가 쓰는 경청에도 다양한 한자어가 있습니다.

첫째 경청(傾聽)은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들음을 의미하며 유의어로 경이(傾耳), 동청(動聽)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루는 경청입니다. 둘째 경청(敬聽)은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경청(鏡聽)은 남을 헐뜯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는 의미로 청참(聽讒)이 유의어입니다.

남을 헐뜯는 말을 그대로 믿는 ‘경청’이 아닌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경청’이나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 ‘경청’을 해야겠죠? 「Listen!(5분 경청의 힘)」을 쓴 버나드 페라리는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경청’에 있다고 했습니다.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은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 사람에 대한 공부를 가장 많이 하라고 했으며, 말하기 전 먼저 경청을 잘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이런 가르침이 밑바탕이 됐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날마다 날마다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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