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2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본 조항이 갖는 의미는 통념보다 넓고 깊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특히 그러하다. 의사 표현과 전파의 자유가 ‘어떤 매개체든 가능하고, 제한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확립된 견해다. 인터넷 게시판의 본인 확인 절차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한 것도 그런 이유다. 한마디로 표현의 자유는 익명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표명하고 전파할 광범위한 권리라는 의미다.

지난 2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짜 뉴스 규제’를 화두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여당은 ‘방치해선 안 될 규제가 필요한 사안’이고, 야당은 ‘공정성은 국민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는 태도다. 안타깝게도 핵심을 잘못 짚었다. 헌법에 보장된 그처럼 넓고 깊은 표현의 자유가 유독 빅테크 기업들이 운영하는 플랫폼상에서 악용된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이스라엘·하마스 교전 초기에 유포된 수백만 건의 가짜 뉴스, 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 당시 포털 다음에서 일어난 여론 조작이 대표 예다. 

인터넷에서 형성되는 여론과 이에 영향을 받는 민심은 불가분의 관계다. 특정 의도를 갖고 여론을 조작하는 순간 민심은 순식간에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대표성을 갖추지 못한 의사결정이 언제든 이뤄진다. 극단적 얘기 같지만 체제를 위협할 선거 조작도 충분히 발생 가능하다. 수년간 정치인과 당원들이 공모해 인터넷상에서 각종 여론을 조작했던 드루킹 사건 같은 일이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이런 악의적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며 방치하는 건 범죄를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행히도 이를 막을 근거가 헌법에 명시됐다. 표현의 자유라 할지라도 ‘국가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 2항이 그것이다. 물론 인터넷 이용 빈도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플랫폼 업체들은 반기지 않을 게 뻔하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가 붕괴하면 플랫폼 사업도 사라진다. 플랫폼 업체 스스로 가짜 뉴스를 조기에 혹은 실시간으로 걸러내는 시스템을 가동해야 여론 왜곡을 막고 민주주의 체제도 수호한다. 못한다면 채찍(강력한 벌금)을 들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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